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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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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없었더라면…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
등록 2015-01-01 15:55 수정 2020-05-03 04:27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에 사는 클리볼드 부부는 아들 딜런 클리볼드가 컬럼바인고등학교에서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상실과 비난과 자책…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고통을 겪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암 진단을 받은 부모는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딜런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엔 더 나았겠죠. 하지만 내게는 더 나은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대부분 부모들에게 “이 아이가 없었더라면…” 같은 불경한 말은 강력한 금지어다. 그런데 성폭행당해 아이를 낳았다거나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거나 범죄자가 됐다면? 부모는 자식의 존재나 가치를 부정해야 하는 강력한 시험대에 오른다.

따지고 보면 원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러하지 않은가. 격세유전자와 열성 특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낯선 이방인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식에게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수직적 정체성을 알아보는 것만큼이나 부모와는 이질적인 특징을 갖고 태어나 동류 집단에서 수평적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과연 왜소증, 자폐증, 지적장애, 정신분열증, 트랜스젠더, 범죄자를 모두 자식은 부모와 다르다는 ‘차이’의 한 두름으로 엮을 수 있을까?

지은이는 전작 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서사를 통해 고통받는 인간의 서사에 접근한다. 1장 ‘아들’은 동성애자면서 난독증이 있던 지은이와 그를 고치려고 애썼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 정체성인 것처럼 와우 수술을 거부하면서 청각장애를 정체성으로, 수화를 자신의 언어로 지키려는 사람도 있다. 자폐인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왼손잡이를 치료하려는 시도와 비슷하다고 하는 인권운동가도 있다. 물론 정신분열증이나 범죄자처럼 어떤 보상도 없는 고통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장면들은 가족은 서로 위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수용하고 적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부모님을 용서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지은이는 그가 인공수정으로 아들을 얻는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장 ‘아버지’에서 이런 말로 책을 맺는다. “우리 가족이 찾은 사랑은 보다 나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식의 사랑이고, 이 행성이 지속하기 위해 종 다양성 유지가 필수적인 것처럼 사랑의 다양성은 배려의 생태계를 강화한다.”

체험하지 못했던 것을 두려워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이 책은 분명 논픽션이지만 사랑의 드라마에 대해 이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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