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적시하는 음모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최근 수년 동안 겪었던 진보의 편두통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지은이는 사회학자로서 음모론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빠졌지만 시민으로서는 거리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국외 사례를 중심으로 논하겠다고 했으나 책(전상진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뒤쪽 표지에 그 대상을 명확히 적시하고 있다. 9·11, 천안함 침몰, 디도스 공격, 세월호 참사….
음모론이 숱한 사회적 사건들의 해석 방법이자 소통 방식으로 자리잡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해진 디도스 공격이나 2013년 국가기관들의 광범위한 대선 개입 같은 정말 터무니없어 보이는 음모론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사업 관련 문건을 모두 폐기한 것을 비롯해, 비밀기록물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고도 권력은 자신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다. 조직화된 무책임성과 계속되는 고통은 음모론이 배양되는 기름진 토양이다. 텅 빈 공공 영역이 좌절과 실망 외에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할 때, 뭐라도 해야 할까 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자기계발에 기대거나 아니면 음모론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음모론이 “약자의 무기이자 통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는 “대중의 해석장애를 유발하려는 정치권력의 음모”를 제기했다. 민중은 증오할 것을 얻음으로써 자신을 탓하거나 권력자를 비난하지 않게 되는데, 그 증오 대상은 자신보다 약한 대상, 곧 다른 인종,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등이기 쉽다. 음모론의 맥락을 따라가다보면 답답한 일상에 대한 책임을 조선인을 공격하는 데로 돌린 일본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집한 미국 티파티 운동, 그리고 한국의 일베가 생겨난 정황 등을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증오할 것을 얻음으로써 자신을 탓하거나 권력자를 비난하지 않게 되는” 음모론은 우리 손에서 만들어져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할지도 모른다. 책은 “음모론은 역사와 현재 정치에 대한 해석에서 능동적이고, 정치와 경제적 권력의 지배적인 역사 설명에 해당하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한에서만 저항적”이라고 선을 긋는다. 질문으로 남을 때 음모론은 비판의 교두보가 될 수 있지만, 답변이고자 과욕을 부리면 그것은 망상이 되고 도그마가 된다는 것이다.
책 서문에서 지은이는 “저항의 불쏘시개였지만 또한 저항을 분쇄하는 조치를 정당화했던” 2008년 촛불시위 때부터 음모론에 대해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촛불은 흩어졌지만 음모론으로 표출됐던 절실한 질문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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