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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선언 “잠이나 자자”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
등록 2014-12-06 15:42 수정 2020-05-03 04:27

1990년대 말 러시아-유럽 우주 개발 컨소시엄은 위성을 궤도에 올려 태양빛을 지구로 반사하려는 시도를 했다. 시베리아와 러시아 오지의 자원 개발 현장에 빛을 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면 24시간 작업이 가능하다. 과학자는 신진대사가 교란된다며, 사회학자는 밤하늘은 공공재인데 한 회사가 독점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조너선 크레리는 (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에서 스모그의 반그늘이 드리우고 고광도 조명이 지속적으로 반짝이는 도시에 사는 사람은 이미 그 권리를 침해받으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책 제목의 ‘24/7’은 일주일 내내 24시간 가동됨을 뜻한다. 앞의 계획을 추진한 회사의 슬로건은 ‘밤새도록 비추는 일광’이다.

찬란한 밤빛 아래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적군을 고문할 때나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미 많은 기관은 24/7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발전기는 24시간 돌아가고 전기는 24시간 공급되며 경비회사는 24시간 대기 중이다. 현대의 시간은 근대의 공허한 계량적 시간과 구별되는데, 어떤 장기적 전망이나 발전의 환상을 완전히 포기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림자 없이 불 밝혀진 24/7의 세계는 역사적 변화의 동력인 타자성을 악령 몰아내듯 몰아낸, 역사 이후의 최종적인 자본주의적 신기루다.”

현재 자본주의를 받치고 있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전세계 민중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면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제도권력을 무력화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믿지 않는다. 그 열광 자체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영화가 있었고 텔레비전이 있었다. 이동성과 화면의 소형화를 갖춘 휴대전화가 다음은 아마 투명 인터페이스와 소형 헤드셋 기기로 구성된 증강현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떤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전환점을 표상하기보다 그저 이전과 다름없이 흔해빠진 연속적 소비, 사회적 고립, 정치적 무능력의 영속화를 수월하게 하”는 임무에 복무하면서.

그리하여 혁명적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목을 맨 현대인은 직접적 강제가 없을 때도 시키는 대로 한다. 저자는 ‘삶에 대한 책임의 절대적 포기’를 보여주는 책 제목으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관광지 100곳’ 등을 들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클릭한 이런 제목들은 더 끔찍하다. 40대가 되면 달라지는 10가지 것들, 20대 버킷리스트, 스팸에 관해 우리가 몰랐던 10가지, 엄마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10가지. 클릭 말고 자자. “잠이나 자자”는 반자본주의 선언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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