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에서 아쉬운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1987년 대통령 선거가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노동자와 학생,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군부독재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대선에서는 민주화 세력이 분열해 독재 세력에 또다시 정권을 빼앗긴 경험은 뼈아픈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은 실패였을까?
(들녘 펴냄)는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민주화를 분석해온 미국외교협회 연구원 조슈아 컬랜칙은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후퇴 경로를 분석했다. 정당한 선거로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지도자가 뽑히고 그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펼쳐 재선에 성공한다. 지도자는 부정부패를 일삼는 독재자로 변신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는 탓에 민주적 선거로는 몰아낼 방법이 없다. 결국 쿠데타가 일어난다. 대중은 ‘민주화’를 외치며 다시 거리로 나선다. 이러한 민주주의 후퇴는 타이 등 몇몇 국가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여러 조사를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신뢰도는 전세계에서 추락하고 있다.
저자는 그 첫째 이유를 경제 때문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화 시대의 경제성장률은 독재 정권 때보다 앞서지 못한다.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성장과 평등을 동시에 가져다줄 것이라는 높은 기대를 품지만 대다수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면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로 급격히 빠져든다. 독재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가혹했지만 적어도 안정과 삶의 질이 보장됐던 때로 기억하는 것이다. 둘째, 권위주의의 귀환이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거나 군부가 물러나면 독립운동가나 민주화운동가가 첫 번째 선거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취약한 상태에서 그 지도자들은 적지 않은 경우 독재자의 방법론과 무기를 차용하고 만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벗어나기란 그토록 어렵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다를 바 없었다. 해방 직후 독립운동가가 대통령이 됐고 그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다. 4·19 혁명이나 5·16 쿠데타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그다지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의 핵심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수십 년간 독재 권력을 누리는 것 역시 수많은 국제적 사례와 닮은꼴이다.
이 책을 옮긴 자유기고가 노정태씨는 “한국 민주주의의 독특한 경로는 1987년 이후”라고 진단했다. 민주화 세력이 ‘분열’했고 즉각적으로 정권을 가져가는 데 ‘실패’한 그 뼈아픈 순간 말이다. 그 덕분에 민주화 세력‘들’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선출된 독재자’의 탄생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민주 세력만 남았다면, 그것은 독재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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