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릿의 싱글 1집 타이틀곡 ‘낫 큐트 애니모어’를 부르는 자우림의 모습. 아일릿 인스타그램 갈무리.
1990년대 모던록의 계보와 2020년대 레게 리듬 기반의 케이팝이 한 프레임 안에서 만났다. 2025년 자우림이 아일릿의 ‘낫 큐트 애니모어’를 1분20초가량 부르는 쇼츠 이야기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는 전체적으로 조도가 낮은 공간에서 곳곳에 초를 켜둔 채 무심하게 나는 더 이상 귀엽지 않다는 메시지가 담긴 노랫말을 부른다. 아일릿 멤버들은 마냥 귀엽게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노래하는 귀여운 사람들이라는 아이러니함에 더해, 정색과 웃음 사이를 오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 곡을 해석해냈다. 그러나 감상자들은 자우림 덕분에 이 곡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매료된다.
최근 쇼츠에서 예기치 못한 만남이 반복되고 있다. 록밴드 자우림이 아일릿의 노래를 부르고, 에이티즈의 종호가 싱어송라이터 우즈의 곡을 소화한다. 또 세븐틴의 도겸은 다비치의 신곡에서 듀엣을 이룬다. 이러한 보컬 챌린지 영상에서는 주로 1분 내외로 고음 파트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이 선택된다. 이는 감정의 압축을 요구하는 시대감각과도 닿아 있다. 즉각적인 몰입과 공유가 가능한 순간이 더 큰 파급력을 갖기에 도입부보다는 후렴이 더 많이 채택된다. 그만큼 반응도 뜨겁다. “이 조합은 상상 못했다” “역시 그룹의 메인보컬인 데는 이유가 있다” 같은 댓글이 줄을 잇는다.
지난 몇 년간 케이팝 신곡 홍보 여정의 지름길은 댄스 챌린지로 통했다. 신곡이 나오면 아이돌이 쇼츠에서 같은 안무를 추고, 이를 다시 상대 팀이 받아주는 식의 ‘품앗이’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제 어떤 아이돌이든 자신의 안무를 실수 없이 소화하는 것 외에, 다른 아이돌의 최신 인기곡 안무까지 섭렵해야 겨우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챌린지의 참여자가 반드시 춤을 잘 춰야 하는 건 아니다. ‘뿅뿅 지구오락실’ 시리즈와 ‘채널십오야’ 채널을 운영하는 나영석 피디가 아이브와 엑소의 안무를, 밴드 보컬리스트인 데이식스 성진이 제이와이피(JYP) 후배 아이돌 그룹의 안무를 소화하기도 했다. 그 의외성은 나영석과 성진에 대한 캐릭터를 확장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보컬 챌린지의 참여자들은 노래를 아주 잘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케이팝 업계에는 탁월한 보컬리스트가 많다. 댄스 챌린지가 관계의 네트워크를 보여줬다면, 보컬 챌린지는 다소 고전적 가치인 가창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래서 이 흐름은 단순히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케이팝 홍보 방식이 관계 보여주기에서 역량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장면으로도 읽을 수 있다. 완급 조절을 성공적으로 해낸 보컬 챌린지는 감상자가 원곡을 찾아서 듣게 한다.
챌린지 참여자의 보컬 역량에 대한 재확인을 마치고 나면 “이 커버 버전의 완곡을 듣고 싶다”라는 반응도 생겨난다. 짧은 보컬 챌린지를 듣고서 완곡을 듣고 싶다는 건 이 콘텐츠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된다. 이렇듯 쇼츠 시대의 커버 문화는 음악을 조각내지만 동시에 새로운 만남을 만든다. 20초 정도의 후렴을 전력을 다해 부르는 누군가의 보컬 쇼츠 영상에서, 한 아티스트의 후렴은 다른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통과하며 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신보가 쏟아지고 정석적인 홍보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좋은 음악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향해 흘러간다.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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