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은 모든 빵의 기초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식빵을 잘 만들면 다른 종류의 빵들은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해. …자른 표면의 기포 구성이 자잘하고 크기가 일정해야 하며 껍질이 부드러우면서 부위별로 고른 색깔이 나야 잘 구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어. …모든 빵의 기본이 된다고 해서 만들기가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야. 기본이라고 해서 간단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
소설가 조경란은 제빵학원에 등록해 한 달 동안 빵을 배우고 만들며 을 구성했다고 한다. 서른 살에 홀로서기에 이르는 여주인공의 황량한 내면을 묘사한 이야기는 포근한 식빵의 감촉과 냄새와는 거리가 멀어서 오히려 대비된다. 여기까지는 1996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 당시 심사평과 작가 인터뷰를 요약한 것. 멍 때리며 이 책 저 책 뒤적이는 주말 오후, 구미가 당기는 쪽은 고매한 문학의 정신보다는 “식빵은 모든 빵의 기초라고 할 수 있지”라는 문장이다. 그래서 만들어봤다, 식빵.
빵을 만드는 과정은 과자나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보다 훨씬 지루하고 길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결과물은 화려한 과자들보다 담백하고 때론 거칠기까지 하니 기기묘묘한 매력이 아닌가. 그래서 이날 내가 도전한 것은 연유식빵. ① 재료를 준비한다. 강력분 350g, 연유 100g, 물 170g, 소금 5g, 이스트 4g, 버터 40g. ② 연유 넣은 물과 밀가루, 소금, 이스트를 한데 섞고 반죽한다. 반죽이 뭉치면 버터도 섞어 반죽한다. ③ 끝없이 치댄다. 바닥에 치고 때리고 손으로 쭉쭉 늘이고… 어깨가 저리고 팔이 아파 그냥 관두고 사먹어야겠다 싶을 때쯤 손에 묻던 밀가루 덩어리가 깨끗하게 떨어져나가고 반죽이 아기 피부처럼 보들보들해진다. ④ 1차 발효 시작. 기다린다, 2배로 부풀 때까지. ⑤ 부푼 반죽의 공기를 빼고 둥글린 다음 다시 중간 발효. 기다린다, 10분. ⑥ 모양을 만들어 식빵틀에 집어넣은 다음 2차 발효 시작. 또 기다린다, 45분. ⑦ 드디어 굽는다.
3시간 동안 출렁대던 반죽 덩어리였던 것이 15~20분이면 빵으로 재탄생한다. 오븐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순간이 펼쳐진다. 빵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고 5~8분이 지나면 반죽이 급격히 부풀어오른다. ‘오븐 스프링’이다. 빵이 봉긋하게 솟아오르는 순간, 오븐 속은 축제의 현장과 같다. 아아, 한 덩이 식빵을 피우기 위해 나의 두 팔은 그렇게 울었나 보다.
온 집안에 부드럽고 달콤한 식빵 냄새가 넘실댔다. 가루를 쏟아 엉망인 식탁과 쌓인 설거지와 기다림의 괴로움은 식빵 냄새에 가려 부옇게 흐려졌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빵을 만드는구나. 엄청난 진리를 깨달은 양 무릎을 치며 김이 솟는 빵을 한 조각 떼어먹었다. 그리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건 그냥 빵맛이잖아. 다시 깨달았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빵을 사먹는구나.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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