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문학작품에 나와 있는 음식을 찾아 직접 상을 차려보리라 결심했지만 소설책을 요리책 삼아 불 앞에 서기보다는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마지막 칼럼을 쓸 때는 커다란 식탁을 차려보고 싶었다. 겨울이 가시기 전에 에 나오는 봅 크래칫처럼 포슬포슬한 감자를 삶고 달콤한 사과 소스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에 나오는 걸쭉한 수프나 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제안한 느억맘(베트남식 생선 소스)과 캐러멜에 삶은 돼지고기를 넣고 1시간쯤 조려서 먹는 요리를 해 음식이 맛있는 냄새를 폭폭 뿜으며 뭉근히 익어가는 시간을 즐겨보고도 싶었다. 에서 묘사된 참판동고는 또 어땠을까. 고기와 견과류, 설탕, 치즈, 크림, 시트론, 토마토, 커리, 닭고기 육수, 칠리파우더, 토르티야 등으로 층을 쌓아 익혀내 아무리 솜씨 없이 만들어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요리라는데!
오늘도 머릿속에서만 여러 번 식탁을 차렸다 말았다. 종이에 내려앉은 글자들은 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지만 상상의 식탁이라 더 풍성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식의 숙명을 말했던 프랑스의 음식평론가 브리야사바랭은 “먹는 즐거움은 다른 모든 쾌락과 섞일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쾌락의 부재를 달래줄 수 있다. 먹음으로써 우리는 본능적 의식에서 나오는 정의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상상 속의 음식을 즐기며 행복을 느꼈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때때로 음식이 옆에 차려진 듯 맛과 향이 생생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으니까.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뿌리치지 못하고 야밤에 국수를 삶아먹거나 피자를 배달시켜 먹었던 것도 그 순간에는 행복했다. 언젠가는 책을 읽다 입이 궁금해
져 밥통 앞에 서서 밥을 한 숟갈 퍼먹고 닫아버린 적도 있는데 부끄럽지만 재미있는 기억이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니 브리야사바랭의 유명짜한 말보다 더 와닿는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칼자국’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인다. 25년 넘게 써온 칼로 썰고 가르고 다져서 딸을 먹인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어쩌면 책 속에서 내가 자꾸만 멈칫거렸던 음식들은 엄마가 내게 새겨놓은 칼자국에서 비롯했는지 모른다.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엄마를 수용하는 과정, 그래서 그 비슷한 것을 먹거나 묘사하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자꾸만 그립고 애틋했던 것 같다. 침이 고인다는 건, 어쩌면 보고 싶다의 다른 말일지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책장 찢어먹는 여자’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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