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보고 싶다매번 문학작품에 나와 있는 음식을 찾아 직접 상을 차려보리라 결심했지만 소설책을 요리책 삼아 불 앞에 서기보다는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마지막 칼럼을 쓸 때는 커다란 식탁을 차려보고 싶었다. 겨울이 가시기 전에 에 나오는 봅 크래칫처럼 포슬포슬한 감자를...2013-03-09 04:15
김용택의 곶감, 나의 밧도어릴 적 시골에 친척집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방학 때마다 할머 니댁에 간다는 짝꿍은 손이 큰 할머니가 쉼없이 내주는 옥수수며 복 숭아며 수박이 지겹다는 듯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부러워하는 기색 을 보이면 한술 더 떴다. 계곡물이 지난해에는 가슴까지 왔었다는 둥,...2013-02-19 22:32
격정을 조용히 고아내기어릴 적,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노란 국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나를 쫓아다니며 그것을 마시길 강요 했다. 처음에는 달래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폭력으로 끝나는, 전 쟁 같은 시간이 지나면 나는 구역질을 하며 코와 입으로 그 국물을 ...2013-02-01 15:16
머리가 띵하게 짜릿한(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민음사 펴냄)에서 스티븐슨 은 딜링턴홀의 유능한 집사다. 스티븐슨의 자존감은 35년 동안 저명 한 가문에 속해 집사 직무를 빈틈없이 해냈다는 데서 비롯한다. 총 무인 켄턴 또한 유능하고 합리적으로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을 처리 한다. 스티븐슨이 ...2013-01-19 00:27
믿을 수 없이 게걸스럽지 않게얼마 전 쓴 푸드 포르노와 관련한 기사(934호 ‘그림의 떡이 나를 위 로한다’)를 보고 친구가 “이거 다 네 얘기 아니냐”고 했다. 맞다. 취재 를 하며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했고 동질감 같은 걸 느 꼈다. 음식 이야기가 쓰인 책이라면 일단 사고 본다거나...2013-01-04 21:59
더 이상 없을 그 평범한 순간어릴 적에 집 마당 한켠에 향나무가 있었다.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닌, 그저 사시사철 잎이 푸르기만 했던 나무는 주로 집에서 키우던 개를 묶어놓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다 언젠가 겨 울부터 쓸모가 생겼다. 나무는 동화책에서 보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2012-12-21 16:59
가리키는 것마다, 집는 술마다나의 프랑스어 실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십 몇 년 전 대입 수능 제2 외국어 영역 프랑스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정도? 그런데 사실 그 해는 제2외국어 시험을 수능에서 본 첫해인 터라 난이도 조절에 실 패했는지 전혀 변별력이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1개 틀리면...2012-12-08 00:00
마지막 잔이 샴페인이라니그날따라 자꾸만 집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의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아빠가 전화를 걸었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마감을 끝내니 좀 노곤 했고, 누우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첫 번째 전화, 남동생이 삼수 끝 에 가고 싶은 학교에 합격했다고 했다. 기뻤다. 두 번째도 같은 ...2012-11-23 20:10
느억맘 중독자로서 피할 수 없는동물 두 마리와 함께 살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육식을 끊지 못한다. 그나마 바뀐 게 있다면, 이전에는 소·돼지·닭고기를 종류별로 냉동실에 재어놓았는데 이제는 반찬에서 고기를 줄이고 먹을 일이 있을 때에만 조금씩 사다 먹...2012-11-09 22:58
이제 30개국에 팔 일만… 올가을 들어 가장 스산한 한 주를 보냈다. 아침저녁으로 손발이 시려 냉장고에 묵혀둔 홍삼 엑기스를 매일 한 숟가락씩 떠먹었다. 약이라 생각하니 먹는 거지 너무 맛없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김성주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핫한’ 아이...2012-10-24 16:03
내 편 하나 없는 적막한 부엌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무나물, 숙주나물 등등을 얹은 뒤 간장을 가볍게 넣어 비빈다.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정성만큼 먹는 데도 정성이 필요한 것 같다. 이윽고 나물 씹히는 소리와 참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퍼지는 가운데 탕국 훌쩍이는 소리가 곁들여진다.” 눈빛에 ...2012-10-13 13:44
밥은 전체 또는 삶집에서 밥이 사라진 지 3주째다. 빵과 국수 등 저장된 비상 탄수화물로 끼니를 대신하긴 했는데, 쌀보다 밀가루가 더 당겨서는 아니고 가장 자신 없는 음식이 밥이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진짜 못한다. 생쌀에 가까운 고두밥이나 곧 떡이 될 지경인 죽밥은 세계 챔피언급으로 ...2012-09-19 15:45
“당신은 내 빵의 버터”는 됐고8월30일 목요일 밤, 기사 하나를 마감했고 나에겐 이 칼럼과 문화 소식 단신을 쓰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번주에 쓸 책을 정하지 못했으므로, 무거운 심정(사실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연이어 불어닥친 두 개의 태풍이 얼추 지나갔다...2012-09-08 11:30
잠보다 재첩 식탐이란 이런 것이겠지. 주초에 재첩국이 머리에 떠오른 이후로 내내 그 국물 훌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양왕용의 시 ‘재첩잡이 여인’은 사실, 서울에 재첩국 맛있게 하는 식당이 어딜까 집요하게 검색하다 건져올린 시다. “어둠 찍어 올린다./ 창날보다...2012-08-22 15:55
걸신 들린 듯 아귀아귀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을 반쯤만 밀어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2012-08-08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