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박미향 기자
얼마 전 쓴 푸드 포르노와 관련한 기사(934호 ‘그림의 떡이 나를 위 로한다’)를 보고 친구가 “이거 다 네 얘기 아니냐”고 했다. 맞다. 취재 를 하며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했고 동질감 같은 걸 느 꼈다. 음식 이야기가 쓰인 책이라면 일단 사고 본다거나 요리 블로 그를 즐겨찾기 해놓는다거나 모르는 언어를 쓰더라도 일단 요리 프 로그램이라면 틀어놓고 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침대맡에 잘 만든 요리책을 여러 권 쟁여두는 나를 겹쳐서 봤다.
친구는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져들 이야기라며 레 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에 실린 ‘뚱뚱보’를 추천했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심지어 몹시 짧다. 늦은 저녁 시골의 작은 레스토랑 에 몹시 뚱뚱한 남자가 들어와 음식을 시킨다. 남자는 시저 샐러드, 버터 바른 큼직한 빵, 수프, 다진 양고기, 크림을 바른 구운 감자를 주문한다. 길이나 굵기가 보통 사람의 세 배나 될 정도의 통통한 손 가락으로 남자는 빠르고 우아하게 음식을 섭취한다. 엄청난 양의 시 저 샐러드는 웨이트리스가 다른 테이블의 주문을 처리하는 사이에 비워졌고 빵바구니는 여러 번 다시 채워졌다. 모든 손님이 돌아가고 텅 빈 레스토랑에서 남자는 소스를 얹은 푸딩케이크와 초콜릿 시럽 을 묻힌 바닐라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서야 식사를 마쳤다.
소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웨이트리스의 시선을 따라간다. 식당의 모 든 직원은 주방에 숨어 뚱뚱한 남자를 빈정대지만 웨이트리스는 그 가 음식을 먹는 과정에 이상하게 빠져든다. “이런 빵은 좀처럼 먹어 보기가 힘들어요.” 남자는 연신 음식에 감탄한다. 음식을 먹는 남자 를 묘사한 문장들은 그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많이 음식을 먹는지를 생생하게 그리지만 결코 그 모습이 게걸스럽지는 않다. 남 자는 음식을 먹다가 계속 바람 새는 소리 같은 것을 내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믿지 않겠지만, 언제나 이렇게 음식을 먹지는 않 는답니다. …만약 우리가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마른 쪽을 택할 겁 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 고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이 결코 힘들거나 버거워 보이는 것도 아 니다. 화자는 점점 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책을 읽는 입장에서 도 그 묘한 상황이 흥미롭다.
남자의 먹는 모습 묘사가 대부분인 이 짧은 소설은 이상하게 중독성 이 있다. 여러 번 읽기에 부담 없을 이 짧은 소설은 아마도 읽을 때마 다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어떨 땐 탐식하는 남자를 넋 놓고 바라 보기만 하게 되기도, 어떨 땐 선택의 여지 없이 뚱뚱보가 된 남자의 배경이 궁금하기도, 어떨 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다 사 라져 없어질 것만 같은 남자에게서 허망함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일생 단편소설만 써온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두고 평론가들은 철 학 없이 공허한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고 혹은 미니멀리즘의 대가 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는 어려워 잘 모르겠지만 어쨌 든 인생의 작은 파편들을 섬세하게 기록한 것만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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