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목요일 밤, 기사 하나를 마감했고 나에겐 이 칼럼과 문화 소식 단신을 쓰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번주에 쓸 책을 정하지 못했으므로, 무거운 심정(사실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연이어 불어닥친 두 개의 태풍이 얼추 지나갔다지만 여전히 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비가 한 번 쓸고 지나간 덕분인지 깨끗한 바람이 콧구멍을 들락거리는데, 가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도 땀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이런 쾌적함이라니.
발등에 불 떨어질 때까지 게으름을 피면서도 복닥거리며 신경을 볶는 성격인데, 어젯밤은 할 일을 미적지근하게 남겨둔 채로도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나는 다음주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이런 초딩 일기스러운 문장이라니). 6월부터 그리던 여행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그래서 몇 주 전까지는 이미 망한 휴가라며 내내 속상했지만 막상 다음주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려니 심지어 목요일 밤부터 설레고 잠이 오지 않는 거다. 어쨌든 이런 기분의 밤이라면 와인이라도 한 잔 따라 마시며 느긋하게 보내야지. 막상 부엌을 뒤졌더니 와인은커녕 주말에 전 부쳐 먹고 남은 막걸리밖에 없어서, 좀 어울리지 않지만 한 사발 들이켜며 밤을 맞았다. 적막한 밤이 버거워 이미 여러 번 돌려본 영화 도 틀었다.
영화는 줄리 파월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에 영화가 개봉된 2009년에 한국판 번역본도 국내에 출간됐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절판됐다. 대신 줄리 파월이 쓴 영문판 원작은 판매 중이다(책을 소개하는 칼럼이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어려운 길을 가기보다는, DVD를 구매하는 쪽을 권한다).
대학에서 연극과 소설 창작을 전공한 줄리 파월은 잘나가는 교지 편집장으로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막상 졸업하고 뉴욕에 당도하고 보니 궁색한 일상만 눈앞에 펼쳐진다. 제대로 된 글 한 편 써보지 못하고 7년 동안 임시직만 전전하던 어느 날, 자신을 구원하는 단 하나는 요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미국에 처음으로 프랑스 요리를 대중화한 줄리아 차일드의 전설적인 요리책에 실린 524개 레시피에 1년 동안 도전하는 ‘줄리 & 줄리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이를 블로그에 기록했다. 줄리는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1년간의 우여곡절을 책으로 펴냈고, 책은 다시 영화로 그려졌다. 초콜릿크림 파이며 구운 바게트에 채소와 토마토 등을 버무려 올린 브루스케타를 비롯해 줄리아의 레시피 중 가장 유명한 뵈프 부르기뇽(프랑스식 쇠고기 와인찜) 등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줄리가 프로젝트를 마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옥상에서 야외 파티를 연 장면(사진)은 여름이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따라해봐도 좋겠다. 줄리가 남편에게 한 건배사 “당신은 내 빵의 버터고, 내 인생의 숨결이야” 같은 동의할 수 없는 비유의 멘트는 현실에 맞게 생략하는 걸로 하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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