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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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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억맘 중독자로서 피할 수 없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돼지고기 요리
등록 2012-11-09 22:58 수정 2020-05-03 04:27
라볼레의 아이들

라볼레의 아이들

동물 두 마리와 함께 살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육식을 끊지 못한다. 그나마 바뀐 게 있다면, 이전에는 소·돼지·닭고기를 종류별로 냉동실에 재어놓았는데 이제는 반찬에서 고기를 줄이고 먹을 일이 있을 때에만 조금씩 사다 먹는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이 으슬으슬할 때에는 소고기국을 잔뜩 끓이고, 누가 고기 사준다고 하면 냉큼 달려나간다.

그리고 책에서 고기 요리가 묘사된 부분에 맞닥뜨릴 때면 여지없이 침을 삼킨다. 예술가들의 삶과 함께해온 다양한 음식을 정리한 (빨간머리 펴냄)을 읽었다. 중국 소설 의 게 요리, 을 쓴 권터 그라스 일가의 장어 요리,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아보카도 수프 등은 그럭저럭 지나왔지만 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돼지고기 요리 묘사에서는 탐식하듯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이건 코친차이나, 안남, 그리고 통킹(베트남 북부 홍강 유역)에서는 국민 요리라고 할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좀처럼 맛볼 기회가 없었다. 인도차이나에서는 고기를 썰 때 비계와 껍질을 떼어내지 않는다. 즉, 고기는 통째로 요리하고 비계와 살도 함께 먹는다. 졸이기 때문에 소스가 한층 맛있다. 돼지고기를 저며 30분 정도 익힌다. 작은 캐서롤(찜 냄비)에 돼지고기 삶은 육수를 조금 담아 각설탕을 6~8개 정도 넣고 캐러멜 상태가 될 때까지 조린다. 설탕이 검은 빛깔이 나고 눋는 냄새가 나면 창을 열어두어야 한다. 캐서롤을 가스레인지에서 내려놓고, 느억맘(베트남식 생선 소스) 몇 컵을 캐러멜에 부어 한데 섞는다. 편육에 육수를 붓는다. 혹시 캐서롤에 남은 캐러멜을 다시 쓸 거라면 몇 번에 걸쳐 완전히 녹인 후 오일을 첨가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45분, 아니 1시간쯤 조린다.”

책을 쓴 요모타 이누히코는 여기에 삶은 달걀을 넣어서 함께 조려도 좋고, 베트남 가정에서 하듯이 고기가 푹 익어 흐물흐물해질 때쯤 코코넛밀크 녹인 것을 넣어도 좋단다. 맛있겠다! 캐러멜의 끈적한 단맛과 느억맘의 쿰쿰한 짠맛에 녹아든 부들부들 기름진 돼지고기라니.

우리는 느억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가족으로 이 요리는 꼭 해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주방에 서는 아버지는 한동안 요리에 흥미를 잃었다가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됐는데, 그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느억맘이다. 아버지는 느억맘을 미역국을 끓일 때도 넣고, 나물을 무칠 때도 넣는다. 토요일에 EBS TV 을 몰아보고 저녁에 실현할 때, TV에서 요리사가 “국간장을 넣으세요” “멸치액젓을 넣으세요” “소금을 넣으세요” 했던 모든 지점에 느억맘을 흩뿌린다. 출장 다녀오는 길에는 느억맘을 한 박스 사와 딸아들에게 전파해, 우리에게 느억맘에 대한 믿음을 주고 주방의 필수품이 되게 하셨다. 그러니 느억맘 중독자이자 육식을 끊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마르그리트의 돼지고기 요리를 실현해볼 수밖에.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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