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
식탐이란 이런 것이겠지. 주초에 재첩국이 머리에 떠오른 이후로 내내 그 국물 훌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양왕용의 시 ‘재첩잡이 여인’은 사실, 서울에 재첩국 맛있게 하는 식당이 어딜까 집요하게 검색하다 건져올린 시다. “어둠 찍어 올린다./ 창날보다/ 질긴 손가락/ 낙동강 칠백리/ 친친 감기는/ 그 끝/ 물방울/ 가락지보다 빛나고 있다./ 철새 한 마리/ 물방울 사이의/ 햇살 쪼다가/ 끝내/ 건너편 바다/ 날아간다.”(전문)
뇌의 미각중추는 맛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맛과 관련한 경험을 끄집어낸다는데, 과연 재첩국의 짭조름하고 구수한 향과 함께 어릴 적 ‘재첩국의 아침’이 떠올랐다. 재첩국은 언제나 아침에 먹어야 제맛이었다. 낙동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까지 부산에서 재첩국은 흔한 음식이었다. 재첩국 색처럼 희뿌연 이른 아침이면 재첩국 파는 아낙들이 동네 골목을 누볐다. “재첩국 사이소” 하는 외침이 집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똬리 튼 수건을 머리에 얹은 아줌마는 커다란 양동이였나, 거대한 보온병 같은 것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국이 담긴 큰 그릇을 아슬아슬하게 머리에 이고 있었다. 빈 그릇을 들고 나가면 아줌마가 “정구지(부추) 따로 줄까?” 물었다. 엄마는 언제나 부추를 국에 섞지 말고 받아오라고 했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면, 그릇에 뽀얀 국물을 그득, 부추 조금을 따로 담아서 주곤 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여러모로 꾸준한 편은 아니지만 ‘아침밥을 먹는 대신 잠을 더 자리’라는 신념은 어릴 적부터 굳건하게 이어오고 있는데, 아침에 재첩국을 사는 날이면 잠을 포기하고 밥을 먹었다. 담백한 그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으면 술술, 그렇게 잘 넘어갔다. 다른 조개보다 알이 작고 살이 보드라운 것도 좋았고, 국을 데워서 먹기 직전에 부추를 송송 뿌리면 부추의 알싸한 향이 국물에 섞여 들어가며 먼저 혀를 자극하는데 그 맛도 좋았다. 후룩후룩 먹다 보면 배가 따뜻해져오는 그 기운도 좋았다. 무엇보다 재첩국은 아침에 사오자마자 먹지 않으면 맛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종종 남은 국을 저녁 식탁에서 만난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국이 아침의 그 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녁의 그것은 맛을 잃어버렸다. 부추는 푸른색을 잃고 국에 잠긴 채 누렇게 떠버렸고, 국물은 몇 차례 데우다 졸아서 짜고 비려졌다. 아침에 입속을 부드럽게 휘돌던 알알의 작은 재첩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늙고 쪼그라들어버렸다.
그래서 2012년 서울에서의 나는 대치동에 있다는 재첩국 맛집을 기어이 찾아냈지만 결국 사먹지 못했다. 나의 미각중추가 재첩국이란 적당히 서늘한 기운이 있는 희뿌연 아침에 술술 마셔야 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탓이겠지. 아침잠을 포기하고 재첩국을 사먹으러 강을 건널 의지는 아직. 그저 꿈처럼 하루쯤 재첩국 아줌마가 집 앞에 나타나주셨음 좋겠다는 게으른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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