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
집에서 밥이 사라진 지 3주째다. 빵과 국수 등 저장된 비상 탄수화물로 끼니를 대신하긴 했는데, 쌀보다 밀가루가 더 당겨서는 아니고 가장 자신 없는 음식이 밥이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진짜 못한다. 생쌀에 가까운 고두밥이나 곧 떡이 될 지경인 죽밥은 세계 챔피언급으로 지을 수 있지만, 알알이 뭉개지지도 않으면서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밥은 어쩜 이다지도 짓기 어려운 걸까. 손등과 손목 사이의 ‘밥라인’에 딱 맞추면 고두밥이고 그걸 넘어서면 떡밥이다. 왜 그 중간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집에서 밥 먹는 날이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되지 않으니 대체로 밥을 하면 그 끼니 빼고는 모두 냉동실로 직행이다. 밥 짓는 게 자신 없다면서도 나는 포부 넘치게 항상 2주치 분량의 밥을 해둔다. 실패를 최대한 멀리 외면하고 싶어서. 그러니 갓 지은 밥을 먹는 것은 2주에 한 번꼴. 그중에 밥이 잘될 확률은 절반밖에 되지 않으니 김이 올라오는, 윤기가 흐르는, 알알이 입속에서 춤을 추다 은근한 단맛을 뿜어내는, 그런 밥을 먹을 기회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다. 1년이면 고작 12번에 불과하다. 그러니 나는 날이면 날마다 돌아오는 것이 아닌 갓 지은 잘된 밥을 먹을 때 좀 숭고해진다. 물과 쌀 두 가지만으로 달고 구수하고 보드라운 맛을 낸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뜨거운 김이 입안에서 폭폭 빠져나갈 때마다 밥이 나에게 전하는 듯한 비애와 찬탄(까지는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 ‘구라’고), 어쨌거나 갓 지은 밥만이 주는 포근한 기운에 압도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김훈 선생은 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 문장을 20대 중반에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밥벌이의 고단함을 밥알 하나 정도만큼 깨친 지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정끝별 시인은 뜬구름 잡는 나의 밥에 대한 단상을 다섯 연에 압축하고, 다시 세 문장으로 설명했다. ‘밥 하면 말문이 막히는/ 밥 하면 두 입술이 황급히 붙고 마는/ 밥 하면 순간 숨이 뚝 끊기는// 밥들의 일촉즉발/ 밥들의 묵묵부답// 아, 하고 벌린 입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반쯤 남긴 밥사발의// 저 무궁, 뜨겁다!// 밥’(정끝별, ‘까마득한 날에’ 전문) 그는 2012년 봄호에서 “밥은 슬프고 따뜻하고 존엄하고 비루하다. 밥이라는 주어는 어떤 술어든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만큼 밥은 전체 또는 삶”이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빈 밥통에 새 밥을 채워넣을 생각이다. 고단했던 한 주를 마치고 밥의 포근함을 맞을 때다. 그 ‘슬프고 따뜻하고 존엄하고 비루한’ 존재를 맞을 시간이다. 뭐 밥이 잘될 가능성이 높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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