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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0개국에 팔 일만…

‘한나 스웬슨 시리즈’와 진생쿠키
등록 2012-10-24 16:03 수정 2020-05-03 04:27
진생쿠키. 신소윤

진생쿠키. 신소윤

올가을 들어 가장 스산한 한 주를 보냈다. 아침저녁으로 손발이 시려 냉장고에 묵혀둔 홍삼 엑기스를 매일 한 숟가락씩 떠먹었다. 약이라 생각하니 먹는 거지 너무 맛없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김성주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핫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이름하여 ‘웰빙 진생쿠키’! “애 젖 먹이며 주방에 앉아서 ‘웰빙 진생쿠키를 만들었다’고 구글에 올리면 전세계에서 주문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젊은이들이 이렇게 어마무지한 가상세계가 있는데도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냐.” 벌써부터 몸에 열이 뻗치는, 진생쿠키의 효력이라니.

부엌으로 들어서기 전에 레시피를 찾으러 책장 앞으로 갔다.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달콤한 추리물이다. ‘코지 미스터리’ 장르로 분류되는 시리즈는 정통 추리물처럼 심각하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소소한 소문이나 갈등 사이에서 좌충우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한국에는 2006년 처음 소개돼 벌써 15권이 출간됐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한나는 ‘쿠키단지’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한다. 소설은 옴니버스식으로 매 시리즈 비슷한 구성의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가장 인기가 많은 (해문 펴냄)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한나 가게에 재료를 배달하던 론 라살르라는 청년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주검 주변에는 초콜릿칩 쿠키 조각이 흩어져 있다. 달콤한 빵과 과자가 살인사건과 엮이면서 미스터리의 단서가 된다.

책은 추리소설인 동시에 요리책이기도 하다. 베이킹 레시피가 삽입돼 있는데 꽤나 유용하다. 책의 3분의 1에 달하는 분량을 레시피에 내준 을 부엌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설탕쿠키 레시피를 진생쿠키에 응용하기로 했다. 버터, 설탕, 달걀, 베이킹파우더, 밀가루, 소금, 바닐라 엑기스, 그리고 대망의 홍삼 엑기스를 콸콸, 했더니 아까운 재료만 버리고 망쳐버렸다. 느끼한 버터와 씁쓸한 인삼의 조합은 ‘어마무지하게’ 아름답지 못했다. 이래서야 원, 언제 레시피를 연구해서 ‘글로벌 30개국’에 진출하나.

꼼수를 썼다. 쿠키틀로 찍어낼 필요도, 반죽한 다음에 모양을 잡아 2~3시간 냉장고에서 굳히는 시간을 가질 필요도 없는 ‘아메리칸 쿠키’를 굽기로 했다. 준비부터 굽기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이걸로 우리는 쿠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는 거다. 대망의 레시피를 공개한다. 버터·설탕·밀가루는 1:1.5:2의 비율로. 간이 딱 맞다. 소금을 엄지·검지로 집어서 조금, 달걀을 깨서 모두 섞는다. 집에 남은 견과류가 있으면 빻아서 넣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홍삼 엑기스를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하로, 아주 조금만 넣는다. 어쨌든 홍삼이 들어갔으니 웰빙은 웰빙. 이제 이걸 구글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전세계로 불티나게 팔려나갈 일만 남았다. 언니들, 이제 우리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구워볼까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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