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박미향 기자
어릴 적,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노란 국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나를 쫓아다니며 그것을 마시길 강요 했다. 처음에는 달래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폭력으로 끝나는, 전 쟁 같은 시간이 지나면 나는 구역질을 하며 코와 입으로 그 국물을 뿜어내기 바빴다. 그럼 한 대 더 맞았다. 더운 날 고생해서 만들어놓 은 것을 토해낸다고. 여름이 오면 동네에 장어 아줌마가 떴다. 커다란 고무통에 구불대며 움직이는 장어를 담아 머리에 이고 집집을 돌았 다. 우리는 매해 단골이었다. 엄마는 100%의 장어탕을 만들었다. 숙 주며 갖은 채소를 넣어 끓인다는 장어탕이기만 했다면 어쩌면 엄마 와 그런 추격전은 벌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엄마가 만드는 장어탕은 아무런 향신채도 넣지 않고 장어가 흔적 없이 무를 때까지 고아낸 것 이었다. 노랗고 뽀얀 국물은 한 입만 마셔도 입술이 쩍쩍 들러붙을 정 도로 진했고, 바다의 비린 맛 또한 농도 짙게 응축돼 있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몇 년을, 그렇게 엄마와 엉겨붙으며 시작하던 때 가 있었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미끌대며 버둥대는 장어를 솥에 넣 으며, 그것들이 녹을 때까지 오랜 시간 불을 지키고 주걱으로 휘저 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인생이란 화려하지도 않고, 더군 다나 장엄하지도 않으며 다만 뱀장어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을 조용 히 끓여내는 것 아닐까. 스튜 냄비의 밑바닥처럼 뜨거움을 견디고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문장은 권지예의 단편소설 ‘뱀장어 스 튜’에서 인용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뱀장어 스튜가 묘사된 부분을 보며 어릴 적 매해 여름 겪던 장어 해프닝이 떠올랐다. 물론 소설은 좀더 무겁고 진 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스무 살에 한 남자를 만나 사랑했던 주인공은 남자에게 배신을 당 했다. 아이를 낳았지만 해외로 입양을 보냈고 여자는 손목을 긋는 다. 시간이 흘러 프랑스에서 가난한 화가를 만났다. 처음으로 여자 의 제왕절개 수술 흉터와 정맥을 끊으려 했던 흔적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었다. 그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내 사랑이 아님을 느꼈다. 한 국으로 건너가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 또한 사랑이 아니다. 권태에서 일탈, 도발에서 허무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결국 다 다른 곳은 다시 뭉근한 불에 폭폭 끓는 일상이다. 다시 돌아온 여자 에게 남편은 삼계탕을 끓여준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 튜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 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 모른다.”
장어탕을 매해 끓였던 그때 엄마 나이에, 차츰차츰 내 나이도 한 해 씩 다가간다. 장어를 사는 순간부터 노란 국물을 우려낼 때까지, 그 진한 냄새에 가족들은 거의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 무도 없는 부엌에 앉아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시간 을 받아들이고 있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이제 겨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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