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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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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죄는 모욕죄 아닌 혐오죄다

현행 ‘표현의 자유’에 ‘범법’으로 항거한 박경신의 <진실유포죄>
“국왕모욕죄가 한국에 강제로 착근된 모욕죄는 없애야” 제안
등록 2012-05-16 13:18 수정 2020-05-03 04:26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온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에 기고한 칼럼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모아 <진실유포죄>를 출간했다. 강재훈 기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온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언론에 기고한 칼럼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모아 <진실유포죄>를 출간했다. 강재훈 기자

지난해 8월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강용석 당시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표결에 부쳤다.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나는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을 품은 건 새누리당 김형오 의원만은 아니었다. 무기명 비밀투표 뒤에 숨은 134명의 반대로 제명안은 부결됐다. 국회에선 ‘강용석 초선 구하기’가 성공했지만, 법정에선 그렇지 않았다. 1·2심 법원은 강 전 의원에게 아나운서를 성적으로 비하(모욕)하고 이를 보도한 기자를 고소(무고)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당선무효형인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1심 판결문을 보면, 강 전 의원은 2010년 7월 대학생 토론대회 뒤풀이 자리에서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들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란 취지의 말을 했다. 판사는 이런 발언이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는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 대한 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 첫 사례다.

아나운서 집단모욕죄 성립 반발로 ‘애정남’ 고소

그런데 강 전 의원은 이런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겠다며 지난해 11월 ‘애정남’으로 잘 알려진 개그맨 최효종씨를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형사 고소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13일 만에 취하했다. ‘고소남’이 문제 삼은 ‘애정남’ 발언은 이렇다. “ 인기 코너 ‘사마귀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이 되려면 집권 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돼요’ 등의 발언을 해 공연히 국회의원을 모욕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온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다산초당 펴냄)에서 아예 모욕죄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모욕죄(형법 311조)는 명예훼손죄(형법 307조·정보통신망법 70조)·허위사실유포죄(2010년 위헌판결 받은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등과 더불어 평범한 시민과 사회적 약자의 발언을 검열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이기도 한 박 교수는 인터넷 경제논객 박대성(필명 미네르바)씨 기소, 문화방송 <pd> 광우병편에 대한 방통심의위 징계, 인터넷실명제 등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해왔다. 지난해 7월엔 개인 블로그 ‘검열자 일기’에 남성 성기가 포함된 사진을 올려, 방통심의위가 사법적 판단 없이 해당 사진에 대해 ‘음란물’이라며 삭제 결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하려다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돼 난생처음 피고인석에 서기도 했다.

그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2008년부터 최근까지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과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진실유포죄’란 제목은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듯,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허위사실유포죄’의 다른 이름이다. 헌법재판소는 미네르바 기소의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에 대해 “허위사실의 표현이 사회윤리 등에 반한다고 해도 헌법이 규정한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 해당한다”며 위헌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국은 미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진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 책임을 부과한다.
박 교수는 모욕죄 역시 왕의 체면을 유지하려는 유럽의 국왕모독죄에 기반을 둔,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키는 반민주적인 법이라고 지적한다. 모욕감을 느끼는 강도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을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겐 ‘당신은 서울시장감’이라고 말하는 게 모욕이 될 수 있지만, 거꾸로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에겐 이 말이 칭찬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법원에서는 모욕죄 인정 여부를 판결할 때 외관상 드러나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다. 모욕당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모욕을 한 사람을 더 강하게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국왕모독죄가 일반인모욕죄로 확산된 국가는 독일·일본·대만뿐이다. 독일에서 귀족들이 상호 간의 무례함을 두고 결투로 다투던 것을 순치하기 위해 만든 제도를 일본이 수용했다. 이 제도는 다시 식민지 시대 당시 대만과 우리나라에 강제로 착근됐다.”(51쪽)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죄라니
그렇다면 강용석 전 의원의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은 무죄인가? 박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다만, 모욕죄가 아니라 혐오죄라는 것이다.
“아나운서들도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더 자유로운 비판을 감수해야 할 공인이다. 하지만 강용석은 ‘여성’ 아나운서들을 폄훼한 것이고, 특히 여성의 소수자적인 측면, 즉 차별과 핍박의 대상이었던 측면에 소구하여 폄훼했다.”(68쪽)
혐오죄는 장애인·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 집단에 대한 혐오를 표명해, 그 집단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표현을 처벌하는 규제로 아직 한국에선 도입되지 않았다. 다만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선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모욕적 언사를 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모든 모욕적 표현을 처벌하는 모욕죄를 혐오죄로 대체해, 타인에 대한 폭력을 일으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표현’만을 처벌하자고 제안한다.
박 교수의 논리에 비춰보면 개그맨 최효종씨의 발언은 죄가 되지 않는다.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강자를 비판한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에 포함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현행법에선 최씨의 발언도 모욕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속 풍자마저도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엄혹한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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