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박미향
할 일이 쌓여 있을 때는 꼭 평소 미뤄두던 일을 하고 싶어진다. 마감을 앞두고 출판면에 쓸 책을 정독하겠노라며 자리 잡고 앉으려던 참이었다. ‘숙제’를 시작하기 직전, 삼천포로 빠지기 좋을 순간이다. 이날따라 이사 뒤 뒤죽박죽이 된 책장이 왜 그리도 마음에 걸린 걸까.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서… 까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던 책장은 지금, 시집과 소설책과 개·고양이와 함께 잘 사는 법 등을 알려주는 책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한데 엉겨 있다.
요리책 사이에서 짐짓 실용서인 양 시침을 뚝 뗀 채 자리잡고 있는 장정일의 (민음사 펴냄)을 ‘매의 눈’으로 포착해 뽑아들었다. 애초에 책장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없이 출발했던 탓에 금세 다시 샛길로 빠진다. 표제작을 펼쳐 읽는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중략)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중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중략) //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1980년대, 자본주의의 가치에 충실한 미국식 패스트푸드가 밀려 들어오자 식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슈퍼’에서 파는 식재료로 만든 ‘햄버거’와 같은 현대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표준에 사람들은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따위의 해석은 집어치우자. 지금은 딴짓을 하는 시간,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라는 부제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시는 햄버거를 만드는 시작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를 따라가며 햄버거에 관한 ‘망상’에 빠져들었다. 나에게 햄버거는 ‘엄마의 음식’이다. 엄마는 햄버거를 즐겨 만들었다. 그러나 생활 대부분의 면에서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생략하기 좋아하는 엄마는 빵 사이를 갈라 버터를 바르고 다듬은 채소와 함께 패티를 끼워넣어 햄버거를 완성하는 과정은 잘라냈다. 엄마가 햄버그스테이크라 주장했던 음식은 마치 커다란 동그랑땡 같았다. 어느 날 도시락 반찬을 만들려고 지글지글 달궈진 팬에 다진 고기 덩이를 올리려는 순간,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일일이 작고 예쁘게 빚어야 하는 동그랑땡 따위 귀찮아. 이걸 한데 합쳐 크게 만들어 햄버그스테이크라 주장하자.’ 그렇게 엄마의 햄버그스테이크는 자주 도시락 반찬으로 당첨됐다. 모양을 내는 일, 한입 크기로 잘라주는 배려 따위도 당연히 생략됐다. 커다란 원형의 그것은 동그란 반찬통에 빠듯하게 자리잡고 들어앉아 있곤 했다. 반찬통에 박힌 햄버그스테이크를 젓가락으로 겨우 파내 ‘클리어’하고 하교를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아침에 만들고 남은 대형 동그랑땡을 빵 사이에 끼워넣어 햄버거를 만들어주시곤 했다. 그때는 그것이 그리도 지겹고 싫었건만, 내 밥상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까마득한 그 시절이 그립다. 주야장천 같은 반찬이어도 좋으니 이제는 요원해진 10여 년 전의 일상으로 하루라도 돌아가봤으면.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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