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이는 요리를 한다. 어설픈 칼질에 손을 벨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매운 양파의 향에 방울방울 눈물을 짓게 되더라도. 각기 다른 성향의 재료가 모여 조화로운 맛을 이룬다는 건, 마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사랑을 이루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므로. 조리 과정 또한 사랑의 감정과 비슷한 맥을 가지므로 우리는 볶고, 끓이고, 은근한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여기 요리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있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민음사 펴냄)은 남미 소설 특유의 풍부한 감각과 환상이 소설 전체에 녹아 있다.
티타는 부유한 농장의 셋째딸로 태어나지만 관습에 가로막혀 사랑도 청춘도 잊으라 강요당한다.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집안의 전통 때문에 티타는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가 청혼하러 왔을 때도 수락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티타의 언니 로사우로라면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하는데, 페드로는 티타의 곁에라도 있겠다며 로사우로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괴로운 티타는 로사우로의 결혼식에 편두통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으려 했지만 독수리 같은 심장을 가진 어머니 마마 엘레나가 눈치채지 않을 리 없다. “연회 준비는 전적으로 네가 맡아서 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1월 크리스마스 파이’를 시작으로 요리가 시작된다. 다달의 요리를 일일이 언급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고 단순명쾌(?)한 방식으로 이달, 8월의 요리만 들여다볼까. 8월의 요리는… ‘참판동고’다. 이 무슨 요리란 말인가. 다른 달의 크림 튀김, 메추리 요리, 쇠꼬리 수프 같은 건 낯설긴 해도 대충 짐작이 간다만은 하필 8월의 요리는 사전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참판동고다. 이럴 줄 알았으면 2주만 일찍 쓸걸(7월의 요리는 쇠꼬리 수프였다).
그러나 다음 장에 실린 상세한 재료는 대략의 맛을 짐작하게 한다. 쇠고기·돼지고기 간 것, 호두, 아몬드, 양파, 설탕에 절인 시트론(밀감류의 일종으로 시고 쓴 맛의 과일), 토마토, 설탕, 크림, 만차 치즈(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의 염소 젖을 짜 만든 치즈), 몰레(온갖 재료를 다지고 빻아 고기 등에 얹어 먹는 남미 고유 음식), 커민(미나릿과에 속하는 식물로 매콤한 맛이 나 카레, 치즈, 칠리 파우더 등에 향신료로 사용), 닭고기 육수, 옥수수 토르티야, 기름. 맛있는 것들로 켜켜이 층을 이룬 참판동고는 아무리 솜씨 없이 만들어도 맛없게 하기가 쉽지 않은 요리라고 한다.
8월의 에피소드는 티타에게 들어온 청혼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온갖 재료가 뒤섞인 참판동고처럼 여러 욕망이 뒤섞인다. 7월 어머니 장례 이후 관습에서 해방된 티타에게 친구였던 존이 결혼을 제안한다. 그러나 티타에 대한 집착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페드로의 눈빛! 티타는 페드로의 겁쟁이 사랑이 이제 싫다. 티타와 존, 로사우로와 페드로는 둘의 결혼을 축복하며 샴페인을 드는데 페드로가 잔을 너무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잔이 산산조각이 나는 등 식사는 엉망진창이 된다. 이런 와중에 이야기는 종종 판타지로 빠져들기도 하는데, 티타가 샤워하는 것을 훔쳐보는 페드로의 눈빛 때문에 차가운 물이 점점 뜨거워져 살갗을 델 정도로 끓어오른다든지, 결국은 티타와 페드로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 그 과정에 엄청난 섬광이 하늘로 치솟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는 음식이 지닌 풍부한 감각으로 상상력을 부추기며 다음달로 이어진다. ‘12월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 고추 요리’로 마무리되는 티타와 페드로의 이야기는 어떻게 결말지어졌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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