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워낙 잔약하고 빼빼 말라서는 아무리 얼굴만 반조고레하여도 실상 아무 보잘것이없습니다. …미용운동 중의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가르쳐드릴 테니 미인 되시려는 분은 다 함께 시험해보십시오. …굽은 등을 교정하는 데는 1. 먼저 젖혀 누워서 두 손을 머리 아래 놓고 턱을 잡아당기듯이 끌고 다음 배를 잔뜩 끌어들이고 궁둥이를 가만가만 듭니다. 그렇게 한 열 번은 되풀이해야 됩니다.”
1937년, 미용체조를 소개한 한 신문의 기사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지. 당시의 언어에 요즘 패션지에 흔히 쓰는 ‘에지’ ‘힙하다’ 등의 단어만 덮어씌우면 70여 년 전의 기사나 지금의 것이나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 땅의 여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예쁜 여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던 것이다.
잡지에 실린 ‘5대 도시 미인 품평기’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푸른역사 펴냄)에서 ‘미인 강박의 문화사’를 고찰한다. ‘여성의 몸가꾸기 담론의 변천과정 연구’ ‘의료인문학 연구’ 등 몸에 관한 문화 연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왔던 그는 이 책에서 특히 여성의 몸에 주목한다. 여성의 몸가꾸기 문화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근대 이후 급속도로 팽창한 사회현상이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사실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동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어떤 기준에 의해 측정되고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20세기 초반 조선 사회의 모습은 강박에 가깝다. 앞서 예시한 미용체조 기사가 한 단면이다. 뿐만 아니다. 마사지법, 중년 여성을 겨냥한 운동법, 자세교정법, 아름다워지기 위한 생활습관 등 당시의 매체들은 세세하다 싶을 정도로 ‘미인 되기’를 강요한다.
언론이 이런 기사를 쏟아낸 것은 독자의 요구가 있었던 탓일 것이다. 여성 독자는 왜 아름다워지려 했을까? 온 사회가 끊임없이 미인이 되라고 속삭였기 때문이다. 근대 한국은 서양인을 동경했다. 일본의 지배에 시달리고, 급작스레 외래 문화를 접하면서 이들과 너무 다른 우리 문화를 하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서구의 것을 진보적인 것으로 학습했다. 문화를 넘어 외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광수는 서양인의 모발을 동경하며 그들의 “머리뼈 속에 무슨 발광체가 있어서 그것이 모공을 통해 전기 모양으로 털끝마다 육안으로 아니 보이는 광선을 사출하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광수와 같은 식으로, 당시 조선의 지식인이 겪은 문화 충격은 기형적인 것으로 자라나는데, ‘인위도태설’을 위시한 우생학 찬양이 대표적인 예다. 인위도태설이란 영국의 유전학자 골턴이 창시한 이론으로, 인간의 혈통은 가축이 개량되는 것처럼 인위적 선택에 따라 개선될 수 있으며 개량된 인종은 진보한다는 게 골격이다. 이를 바탕으로 1920년대 지식인들 사이에 우생론과 민족개조론이 점차 확산된다. 급기야는 여운형·이광수·주요한 등 85명이 1933년 ‘조선우생협회’를 창립하고 이란 잡지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근대 이후 한국에서 예뻐진다는 것은 일종의 ‘인종 개조’였다.
이에 더해 유명 인사들은 발벗고 나서 여성 외모의 기준을 폭력적으로 제시했다. 저자는 1920~30년대에는 미인의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심미안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소설가 김동인은 “강변에 늘어진 수양버들” 같아야 아름답다고 말한다. 화가 김용준의 기준은 이렇다. “어깨가 좁을 것, 허리춤이 날씬하여 벌의 허리처럼 될 것.” 소설가 현진건은 자신의 기준에 미달한다면 화까지 낸다. “제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기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
사람들은 전국의 미인들을 비교·품평하기도 했다. ‘풍류랑’이라는 필명의 기고가는 1929년 잡지 에 ‘5대 도시 미인 평판기’라는 글을 실었다. 서울 여성은 ‘월궁에서 내려온 선녀’라는 둥 해주 미인은 통통한 볼이 매력이라는 둥 각 지방의 여성들을 사진과 함께 실어 ‘품평’한다. 소설가 심훈은 에서 여배우들의 연기력, 근황 등과 더불어 외모 품평을 곁들였다. 남자 배우는 간단하게 언급한 반면, 여성은 “뚱뚱한 몸이 아주 절구통같이 팽대해졌다”는 식으로 구체적이다.
오피니언 리더들마저 강박적으로 ‘미인’을 외치니 일상의 여성들도 점차 남성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언론매체들은 ‘러브’(연애)와 ‘스위트홈’(신가정)을 지키려면 미모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여성을 옥죈다. 이러니 여성은 기준에 맞춰 자신을 가꾸는 걸 넘어 성형에도 시선을 기울인다. 미용성형수술은 1920~30년대에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 사회에서는 성형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커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끔의 수요자가 고민을 털어놓아도 딱 잘라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935년 의 ‘위생문답’이란 코너에서 독자가 코를 높이고 싶다며 장문의 고민을 구구절절 펼쳐냈다. 신문의 답변은 단 한 줄이다. “천연적으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몸을 교정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 여성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모른다.
현재와 놀랍도록 닮은 ‘미인 강박’
한편 저자는 근대의 미인 강박에서 긍정적인 조각을 찾아내기도 한다. 여성이 ‘스스로’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을 가지게 됐다는 것 자체를 여성 해방의 작은 줄기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소비의 주체로서 기능하고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됐다는 점에서 능동적 행위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통해 다시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고 소비되는 악순환에 놓인다는 점에서, 여성은 결국 ‘미인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나열하는 근대의 미인 강박 사례들은 세기가 바뀐 현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방식만 달리할 뿐 우리는 여전히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품평하고 자신의 기호에 따라 나열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예쁜 여자’에 집착해야 하는 걸까? 오늘도 미녀(가 되고자 이 밤을 굶어야 하는 이)들은 괴롭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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