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1989년 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그해 3월 한겨레신문사에 들어가, 경찰 수습기자로 여름을 나야 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자고, 병원 응급실, 유치장 등을 돌아다니며 ‘기자질이 나한테 맞는 건가’ 의심하던, 가뜩이나 덥던 그 여름에 대학생 한 명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임수경이라는 여대생이 당시로선 갈 수 없던 땅, 평양에 간 것이다. 두 달 가까이 경찰 출입 기자들 발에 불이 붙었지만, 내 관할구역 밖의 사건이었고 수습이던 나를 그 취재에 차출하는 일도 없었다. 여전히 나는 ‘기자질이 내게…’ 의심하며 덥고 무료하게 지내다가 여름 끝자락에 검찰 출입 기자 발령을 받았다.
그렇다고 사정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내 적성에 대한 의심은 그대로였고, 새 출입처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초가을 어느 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9층 공안부 복도를 아무 생각 없이 어리바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흰 수의의 여자가 교도관 두 명과 함께 걸어왔다. 임수경이었다. 임수경이 평양에서 돌아와 곧바로 안기부에 구속된 게 한 달쯤 전이었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뉴스 가치가 아주 높은 인물이었다. ‘검찰에 송치된 모양이구나!’ 명색이 기자라면 그 자리에서 당연히 몇 마디 물어야 할 것 아닌가. 놀란 채로 어리바리하게 서 있는 사이에 임수경은 교도관들에 둘러싸여 다른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잠깐, 한 3~4초 정도 그도 나를 봤던 것 같다.
그때 임수경은 정말 예뻤다. 그렇게 예쁜 이가 갇혀 있는데,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취재도 못하고, 띨띨한 놈! 검찰청 복도에서 역광을 받은 그의 실루엣이 머리 안에 사진으로 남았다. 그 뒤로 임수경의 재판을 쭉 취재했다. 당시가 공안 정국이어서 시국사범이 넘쳐났다. 그들 모두 말을 잘했지만, 특히 임수경의 말은 담백했다. 장황하지 않고, 운동권의 상투적인 표현이 없으면서 생기가 흘렀다. ‘통일의 꽃이라고 할 만하구나!’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3년 반 동안 갇혀 있다가 1992년 성탄절에 풀려났다. 얼마 지나 신문사에 찾아왔고, 몇몇 기자들과 술을 마셨다. 나도 거기 끼었다. 검찰청 복도에서 본 일을 말했더니, 임수경은 대머리 까진 남자를 본 것 같다고 했다. 구속된 뒤 처음 본 민간인이어서 ‘날 좀 구해줘!’ 하고 맘속으로 막 외쳤단다.
임수경은 술을 좋아했다.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했고. 큰일 벌이고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 같지 않았다. 쾌활했다. 그때가 임수경의 20대였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임수경은 이런 말을 했다. “그때(평양 갔을 때) 만 스무 살이었어. 뭘 얼마나 알았겠어. 그런데 나와보니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져 있는 거야. 그래도 20대 땐 임수경으로 살았는데, 30대 땐 임수경이 아니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안 되더라. 지금은 다시 임수경으로 산다고 생각해. 사람들도 만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되는 게 있어요. 아무리 다른 옷을 입으려고 해도 안 되는 거지. 그럴수록 더 나빠지기만 하고….”
돌이켜보니 임수경은 30대에 정말 그랬던 것 같다. ‘통일의 꽃’이라는 이미지에, 과거의 후광에 갇히지 않고 사회 전문 영역에서 현재의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모색을 했다. 난 그와 단골 술집이 같고 어울리는 사람들도 비슷해 자주 보면서 그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대중 앞에 나서고, 박수와 갈채를 받는 일을 자제하길 바랐던 것 같다. 아무래도 임수경의 전력은 그에게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라도 그러지 않을까. ‘통일의 꽃’이라는 거대한 호칭에 부응할 만한 실천의 길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세상은 구체적·미시적으로 변하는데 그만이 거대 담론의 상징으로 묶여 있다면 그 삶이 공허하지 않을까.
“임수경이 아니려고” 노력하다가도, 사람 좋아하는 임수경은 대중이 부르는 자리에 나가곤 했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임수경에겐, 인기를 즐기는 아이돌 스타 같은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 쾌활함이 임수경의 장점이었는데, 이후 일들이 가혹했다. 결혼했다가 이혼한 건 그렇다 쳐도, 하나뿐인 아이가 죽었다. 그 뒤 절에 1년 반 있었고, 2년은 외국에 나가 있었다. 난 그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알지 못한다. 짐작조차 못한다.
얼마 전부터 임수경은 다시 쾌활해 보였다. 한동안 취하면 울더니, 요새는 안 운다. 과거를 돌이킬 때의 말이 담백하다.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보는 것 같고, 그렇게 견딜 만한 거리를 찾은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알아보잖아. ‘임수경씨?’ 하고는 바로 그 뒤에 ‘내가 당신 때문에’ 하면서 이어지는 말들이 만만치 않을 때가 많아요. ‘당신 때문에 군대에서 얼마나 맞은지 아냐…, 당신 때문에 여자와 헤어지고…, 당신 때문에 다른 길을 갔고….’ 그런 소리 워낙 듣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갖게 되더라고.” 요즘 그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대학에서 신문방송학 강의를 하고,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고, 트위터를 열심히 하고, 술도 자주 마신다. “술? 많이 안 먹어. 매일 마셔서 문제지.”
임범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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