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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사회엔 기자가 1명뿐이었다



작품성에 집착하며 영화 수입하는 구창모… 비디오로 직행하는 영화 안타까워 혼자 시사회 열기도
등록 2010-06-15 22:10 수정 2020-05-03 04:26
구창모.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구창모.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얼마 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후배 집에 갔다가, 꼬불꼬불한 골목 모퉁이에 문을 열고 있는 비디오·DVD 대여점을 봤다. ‘비디오 대여점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2년 전 한 영화의 DVD를 빌리기 위해 종로구 일대 대여점을 뒤진 적이 있다. 자주 가던 대여점 두 곳은 이미 카페로 바뀌었고, 대여점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느 틈에 사라져 추억이 돼버린 곳, 그중의 하나로 비디오 대여점을 꼽는다면 그것도 이미 한물간 얘기일 거다.

하긴 1960~70년대 청소년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던 만화 대본소도 그렇게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대중문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가 한국만큼 빠르고 또 전향적인 나라도 드물 거다. 당연히 그 변화 때문에 밥줄이 끊기고 직업이 바뀌는 이가 적지 않을 터. 비디오 대여점 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콜럼비아의 한국 지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구창모(47)다.

구창모는 대학 졸업 뒤 광고회사에 다니다 구제금융 파동 때 해고돼 1998년 봄 콜럼비아영화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콜럼비아가 직접 배급하는 영화의 홍보·마케팅 일을 하다가, 얼마 뒤 비디오·DVD 시장이 커지면서 2000년 7월 그도 콜럼비아영화사 안의 비디오·DVD 관련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곤 3~4년 뒤부터 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불법 다운로드 때문인지 뭔지 여하튼 비디오·DVD 판매뿐 아니라 대여까지 수요가 크게 줄어 대여점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할 때였다.

구창모 말이, 미국 본사의 임원이 오기만 하면 “한국 사람들이 극장에서는 그렇게들 영화를 많이 보는데 DVD를 이렇게 안 본다는 게 말이 되냐. 당신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질책을 한다고 했다.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먹더라고 했다. 마침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이 불법 다운로드 방지 운동에 나서자, 구창모는 그들과 세미나를 함께 하고, 관련 자료도 넘겨주면서 열심히 뛰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그건 잠깐 미루고 구창모에 집중하자.

그의 이름은 옛날 그룹 ‘송골매’의 보컬리스트와 똑같지만, 생긴 건 배우 김상경을 닮되 김상경보다 조금 투박 혹은 소박한 인상이다. 체구가 크며 큰 체구답게 평소에도, 술 마셨을 때도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군대 가서였다. 영화감독 육상효와 고등학교 동기인데, 카투사에서 그를 다시 만났고 둘이 매일같이 미군부대에서 자막도 없는 미국 영화를 봤단다. 자막 없는 영화를 공부하듯 봐서일까. 그는 원래도 진지한 편인데 영화에 관해선 더욱 진지했다.

내가 구창모를 알게 된 건 1999년 영화담당 기자를 하면서였다. 그때 콜럼비아사가 직배한 영화 가운데 이 있었다.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고, 수술해서 인간이 되고, 그러면서 200년을 사는 얘기였는데 이 영화를 소개한 한 신문 기사에 ‘상영 시간 2시간이 200년처럼 길게 느껴진다’는 표현이 있었다. 얼마 뒤 구창모는 뤼크 베송 감독의 기자 시사회가 있던 날, 무대에 올라와 그 기사를 인용했다. “이번엔 200년(바이센테니얼)에서 100년으로 줄여 100년전쟁에 관한 영화를 준비했으니, 조금 덜 지겹지 않을까 합니다….”

그는 작품성 좋은 영화가, 흥행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극장 개봉 없이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일을 꽤나 안타까워했다. 비디오 부서로 옮긴 뒤 그는 비디오 대여점으로 직행할 영화 가운데 몇 편을 우겨서 극장 스크린에 올렸다. 애니메이션 , 뮤지컬 같은 영화들이었는데, 흥행이 그리 좋았던 것 같진 않다. 2006년이었다. 의 샘 멘더스 감독이 걸프전을 소재로 찍은 영화 가 콜럼비아사의 신작이었는데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게 됐다. 구창모는 그게 아까워서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의 스크린 한 개를 빌려 기자 시사회만이라도 열기로 하고 기자들을 불렀다. 그날 거기 간 기자는 나 혼자였다. 구창모의 말. “언제부터, 왜, 이렇게 문화가 바뀌었죠?”

기자들이야 워낙 바쁘니 그날의 시사회는 우연히 그랬을 수 있지만, 여하튼 그와 내가 알기 시작한 이후 수년 동안 영화 관람 문화가 크게 바뀐 건 사실이었다. 비디오·DVD 시장의 궤멸 역시 어쩔 수 없는 변화의 대세였다. 구창모는 이리저리 열심히 뛰었음에도, 콜럼비아사는 2008년 비디오·DVD 사업부문을 폐쇄했다. 콜럼비아사를 나온 구창모는 ‘소서러스 어프렌티스’라는 영화 수입사를 차리고 총괄상무를 맡았다. 이 회사가 수입한 는 관객 20만 명을 넘어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구창모의 진지함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이 회사가 곧 개봉할 영화가 장 뤼크 고다르의 이란다.

임범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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