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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에 익숙한 이들에게 자신의 성장 서사를 즐기게 하라

‘운’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운’을 객관화해 행동하도록 기회와 선택 늘려야
등록 2026-06-11 21:13 수정 2026-06-15 11:37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동시대 사람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장치는 많다. 학교나 교회와 같은 전통적인 장치부터 텔레비전·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매체, 일상적으로 만나 나누는 시시껄렁한 이야기까지 많은 장치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 동시대에 사람들의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을 꼽으라면 단연 게임이다. 게임을 하건 하지 않건 우리는 게임화(gamification)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세계관의 변화에 게임이 미친 가장 큰 지점은 게임의 이야기 조직 방식이 다른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소설의 방식과 정반대인 게임의 서사

 

이야기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내가 아닌 존재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나를 잊고 다른 존재가 되어본다. 그것도 하나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여럿의 등장인물에 번갈아 가며 역지사지함으로써 책을 다 읽고 빠져나올 때 현실의 삶에서도 나와 거리를 두고 타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볼 줄 알게 한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책을 읽을 때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자기를 잊고 그 세계로 더 잘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같은 대학에 근무하는 게임 스쿨 교수들의 말에 따르면 게임의 서사는 정반대다.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게임 서사를 구축하면 그 게임은 반드시 망한다고 한다. 게임 서사는 고정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플레이어 중심이다. 나로서 ‘플레이’를 하며 플레이어로서 내가 성장하는 나의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는 철저하게 자신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선택하고 행동하며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삼국지’를 예로 들면 잘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유비에게도 공감했다가 조조에게 이입한다. 글쓴이가 서사를 짠 방식에 따라 제갈공명에게 이입했다가 사마중달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에서 이들 모두는 플레이어인 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아이템’이다. 자신이 가진 자원과 성향에 따라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진행하는가에 따라, 즉 플레이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성장의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화돼 있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보상 시스템’과 ‘밸런스’라고 한다. 게임에 역할별로 밸런스가 있고 예측할 수 있는 보상 시스템이 짜여 있어야, 플레이어는 자신이 어떤 경로로 무엇을 할지 ‘기획’하고 ‘전략’을 짤 수 있다. 기획에 따라 플레이어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전략이며 그것이 플레이어의 ‘능력’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아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자원으로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선’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돈이 많다고 해서 돈으로 능력을 사는 것은 반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럿이 접속해서 길드(연맹)를 만들어 다른 길드와 경쟁 혹은 전쟁을 하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 내가 속한 길드에 과금(결제)을 많이 하는 ‘헤비 과금러’가 있다면 축복이다. MMORPG의 경우 어떤 길드에 들어가는지가 게임의 승패를 가르며 서버에서 5위 안에는 들어야 지속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 그중 3위 안에 들어가는 길드라면 반드시 한 달에 최소 수백만원을 결제는 플레이어가 제법 있고 이 사람의 ‘우산’ 아래 있기 때문에 ‘나’는 성장할 수 있다.

같은 길드에 있다면 이런 플레이어는 고마운 존재다. 우선적으로 이런 플레이어가 있어야 강한 길드가 되고 보호받을 수 있다. 서버가 죽자사자 난장판 전쟁이 되면 아무도 성장하지 못하고 망해버리기 때문에(이후에는 서버 간의 전쟁이 펼쳐지니) 강한 길드끼리 서로 전쟁하거나 약한 플레이어를 약탈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맺는다. 시시한 하위 길드에 있으면 이런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플레이하기 힘들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게임에서 중요한 ‘보상 시스템’과 ‘밸런스’

 

나아가 한 번에 좋은 보상을 받는 연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버스’를 타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들도 연맹원이 강해지는 것이 곧 연맹이 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버스가 되어준다. 버스가 된다고 해서 보상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귀찮고 자기 자원을 소모해가며 하는 일이지만 높은 전투력을 지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길드 안에서 다른 ‘쪼렙’(게임에서 레벨이 낮거나 초보를 말함)들의 성장을 돕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내가 하던 한 게임에서 연맹원들은 날마다 버스가 되어준 고투력 플레이어(헤비 과금러)를 갈 곳 없는 쪼렙을 거두어 먹여 살린다며 ‘모두를 먹여 살리는 분’이라고 칭송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연맹은 그렇게 단기간에 성장할 수 없었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2위 연맹과의 격차를 크게 벌려 상대가 되는 연맹이 없었다. 그 성장의 5할은 이 고투력 플레이어의 덕분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은 철저하게 능력주의적 세계다. 자원이 많은 것은 다른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해 열패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다면 혜택이 된다. 이런 헤비 과금러/고투력의 곁에 있지 못하는 것이 불행이지 과금해 고투력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과금을 한다고 무조건 다 고투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고투력이 되더라도 규칙을 자기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다른 플레이어나 연맹을 마음대로 약탈하고 파괴하며 ‘승자독식’하면 서버 생태계 자체가 폐허가 되어버린다.

물론 과금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열심해 해야 한다. 고투력에 의지해 성장하기 때문에 과금을 많이 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기여’를 해야 한다. MMORPG에서는 이런 밸런스를 잘 맞춰놓는다. 무과금이나 소과금이라고 하더라도 노력 봉사를 통해 연맹원들에게 기여할 방법을 배치해놓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버 지도를 샅샅이 뒤져서 숨겨진 보물을 연맹원과 공유하는 일 같은 것이다. 또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 또는 적어도 한 주에 몇 번은 있는 이벤트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이벤트에는 참석하지 않고 연맹에 기생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혐오하는 짓이다. 게임의 세계관에서 최대 빌런은 적이 아니라 ‘무임승차자’이며 이런 무임승차자는 가차 없이 추방되고 처벌된다. 이 세계관에서 가장 용납되지 않는 일은 ‘강한 자’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무임승차’다.

 

용납되지 않는 최대 빌런은 무임승차자

 

잘 만든 게임에는 전략가인 지도자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주 헤비하게 과금하지 않는다. 대신 과금의 정도와 성향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 성장의 루트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헤비 과금러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조언하며 연맹을 운영한다. 연맹 전체가 성장하기 위해 각각의 플레이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각 플레이어들이 최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고투력이 곁에 있는가 없는가만큼이나 이런 전략에 해박한 ‘지도자’를 만나는가 못 만나는가에 따라 MMORPG에서 자신의 성장 서사가 만들어지는가 안 만들어지는가가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게임은 상호의존적이며 호혜적인 세계다. 능력주의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한쪽이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기여하게 구조화돼 있다. 각자가 가진 자원의 양에 따라 호혜성은 비대칭적이지만 성실한 활동을 통해 누구나 기여할 여지를 만들어놓았고 그 ‘일개미’들에게 고투력이나 전략가도 의존한다. 능력주의를 상호의존과 호혜성으로 절묘하게 보충하기 때문에 적어도 좋은 길드라면 기여도에 따라 철저하게 위계적으로 운영되지만 동시에 호혜적인 ‘우정’의 세계로 구축된다. 현실의 능력주의보다 훨씬 더 이상적이다.

물론 어떤 길드에 들어가는지, 아니 애초에 어떤 서버에서 게임을 시작하는지, 그 길드에 뛰어난 지도자와 전략가가 있는지, 게임의 상호의존성과 호혜성을 이해하는 헤비 과금러와 고투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대다수에게 그건 ‘운’이다. 심지어 과금러나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잘 운영하고 자기희생적인 ‘버스’가 된다고 하더라도 들어오는 플레이어가 족족 무임승차자라면 속수무책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게임 개발자인 교수는 그게 바로 게임의 재미라고 말한다. 그는 한마디로 게임의 재미는 운을 기회로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카드 게임을 예로 들자. 나에게 어떤 카드가 들어오는지는 운이다. 그 한 번의 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그건 게임이 아니라 그냥 운명이다. 반면 카드를 뽑을 기회가 단 한 번밖에 없다면 그건 제비뽑기에 불과하다. 이런 게임은 재미가 없다.

게임이 재미있어지려면 운 다음에 기회가 있어야 한다. 선택할 기회. 주어진 카드의 운을 객관화해서 보고 나에게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포커인지, 투페어인지 등등) 읽은 다음 어떤 카드를 버릴지 선택한다.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들어온 패를 보고 다시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읽고 난 다음 또다시 선택한다. 운을 통해 기회를 읽고 행동을 선택하는 것의 연속이 게임이 주는 재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의 재미는 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선택을 늘리는 것이다. 운에만 맡겨진 게임은 그냥 도박이며 운이 작동하지 않는 게임은 이미 과정과 결론이 정해진 것이기에 게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운이 생기고 작동하는 것은 그대로 두되 그 운을 어떤 기회로 읽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플레이어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며 그것이 게임의 서사적 기쁨이라는 것이다. 운이 없다면 읽을 것도 없고, 읽은 것이 없다면 선택도 없다.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이 가장 저항하는 것은 ‘운’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2026년 6월7일 시민들이 참정권 침해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이 가장 저항하는 것은 ‘운’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2026년 6월7일 시민들이 참정권 침해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통제 거부하고 자유를 절대화하는 이유

 

게임화된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들이 가장 저항하는 것은 ‘운’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운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기회를 공정하게 주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말하겠지만 세계관의 차이는 정반대 해석을 낳는다. 이들에게 타인의 운을 통제하는 ‘동등한 기회’라는 말은 곧 ‘기회 박탈’로 여겨질 것이다. 운을 통제하는 것은 곧 기회를 통제하는 것이며, 운이 없다면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운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기회를 늘리라고 요구한다. 플레이어들이 자신이 가진 운이 어떤 기회를 주는지를 읽고 그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겠다고 말이다. 이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이 통제를 끔찍하게 여기고 자유를 절대화하는 이유다. 나아가 이들에게 진보란 기회를 넓히는 이들이 아니라 운을 줄여 기회까지 줄이는 자들로 여겨진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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