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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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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



술엔 무원칙주의자, 미술엔 원칙주의자인 ‘야인’ 이섭…
미술판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술꾼이 될까
등록 2010-09-09 17:01 수정 2020-05-03 04:26
이섭.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이섭.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이섭(50)을 얼마 전에 만났다. 2년여 만이었다. 혈관계 질환이 생겨 넉 달 동안 술 안 마시고 운동했단다. 그랬더니 많이 좋아져 나 만나기 일주일 전에 한잔했고, 그날도 나를 만났으니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 위스키를 마시는데, 일본 만화에서 봤다며 널찍한 온더록 잔에 얼음 없이 위스키만 따라 마셨다. “이래야 향이 잘 올라온대요.” 몇 잔 마시고 얼굴이 불콰해지더니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위스키 한 모금을 머금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람이 저만큼 행복해하기도 쉽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 기분을 나도 알 것 같았다.

나는 1994년 1월1일에 술과 담배를 한꺼번에 끊었다.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금주는 한 달, 금연은 넉 달 갔다. 한 달 금주하고 재검사를 하니 정상치로 돌아왔다. 가뿐한 마음으로 점심 식사 때 맥주를 한 잔 마셨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너무 자주 마셔서 이 맛이 얼마나 훌륭한 건지 몰랐구나!’ 이섭이 넉 달 금주하다가 마신 위스키의 맛이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이섭과의 인연이 그때, 1994년 금주를 마치고 다시 술을 마시면서 시작됐다.

1994년 봄부터 열 달 동안 난 미술 담당 기자를 했다. 기자 하면서 여러 부서를 돌아다녔지만 미술 기자는 힘들었다. 현대미술이 워낙 난해한데다, 짧은 식견에 시각 언어를 활자 언어로 옮긴다는 게 참 버거웠다. 기사는 대충 쓰면서 술은 어지간히 마셨는데, 그때 제일 자주 함께 마신 게 이섭이었다. 이섭은 큐레이터 하면서 미술평론도 하고, 재능 있는 신예 작가를 뽑아 후원해주는 ‘나무 아카데미’ 등의 일을 했다. 인사동에서 낮술을 마시곤 이섭 사무실 소파에서 자고, 깨서는 저녁에 또 마시고…. 이섭은 겉으론 멀쩡하고 순하지만, 생각과 기질에 야인 또는 기인스러운 데가 있었다.

미학에 관한 한 그는 원칙주의자여서 말을 안 꺼내면 몰라도, 일단 말이 나온 뒤엔 타협이 없었다. 원칙을 따질 땐 윤리, 상식, 동정심 같은 건 끼어들 틈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순간순간 무정부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쾌락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그때 꽤 잘나가는 선배 미술 작가가 있었는데, 이섭은 그 선배의 그림이 엉터리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한데 얽히게 됐고, 그 선배가 잠깐 호기를 부려 자기 자랑을 했다. 남들이 있든 없든 이섭은 꺼리지 않았다. “선배 그림 ××야, 그 따위로 그리려거든 그리지 마!”

이섭의 야인 기질은 부지불식간에 보수적인 이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1990년대 중반 이섭은 한 스포츠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동서양의 유명한 그림에 담긴 성적 표현의 의미와 문맥, 배경 같은 걸 쉽고 재밌게 풀어 쓴 것으로 연재 뒤 라는 책으로 나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단체가 이 책이 음란물이라며 검찰에 고소했다. 내 생각인데, 음란하기보다 불경스럽게 느껴진 게 아닐까. 가렸으면 싶은 그림들을 버젓이 싣고 얘기하는,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는 그 태도가 말이다. 당시엔 영화, 만화, 도서 등이 음란죄로 문제되는 일이 잦아서 사람들끼리 우스개로 ‘차라리 국가보안법이 낫지 음란죄는 끔찍하지 않느냐’고 떠들 때였는데, 이섭은 도무지 겁먹는 구석이 없었다. 어쨌든 검찰은 저자를 소환하는 일 없이 무혐의 처리했다.

1990년대 후반 이섭은 공공미술 쪽으로 관심을 돌려 ‘아트컨설팅서울’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안에 일주아트하우스를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 땐 지하철 열차를 이런저런 그림이 그려진 비닐로 뒤집어 씌우는 래핑 작업을 했다.

이따금씩 만나 술을 마시면서 보면, 이섭은 수염을 기르고 화려한 색상의 안경을 쓰는 등 외양도 야인스러워졌다. 2006년엔 하던 일을 잠시 접고 가톨릭대학 철학과 대학원을 갔다. 그동안 썼던 글들을 보니 창피했단다. “미술 쪽은 무책임하니까, 순간 혹하게 하는 것이 많은데 사기도 많고 다가가보면 아무 영양이 없고 그러기 쉬운데 이쪽(철학)은 분명하니까 그게 좋더라고.” 어쨌거나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하는 동안 생활비가 떨어져 얼마 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나 계약하고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하면서도 술을 어지간히 마셨던 모양이다. 게다가 고기와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등 혈관계 질환에 ‘유익한’ 음식을 좋아했다. 이섭은 야인답게, 술로 인한 탈도 일찍 났지만 그 정도가 경미해서 조만간 술꾼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옛날과 같을 수는 없을 거고…, 세월과 나이를 무시할 수 없을 거고…, 길게 마시기 위해 조금씩 마시는 수밖에.

임범 애주가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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