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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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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훌륭한 성인용 종합위락시설이여

나이트클럽 이용기 두 번째…
완곡어법과 다양한 은유로 점철된 부킹, 잘만 이용하면 일종의 청량제 같은 것
등록 2010-02-25 11:30 수정 2020-05-03 04:26
이 훌륭한 성인용 종합위락시설이여

이 훌륭한 성인용 종합위락시설이여

청춘남녀들이 나이트클럽에 가는 이유는 역시 다양한 이성을 접할 수 있는 ‘부킹’ 시스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이트에서는 아무도 ‘춤과 음악을 즐기러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이트에 온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의 부킹에서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매력적인 이성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나 역시). 부킹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는 야광 팔찌를 준다는데, 그걸 차고 있으면 웨이터들이 알아보고 손목을 안 붙든다고 한다. 그런데 야광 팔찌 찬 여자는 한 명도 안 보인다. ‘아, 난 정말 안 내킨다는데 왜 이러실까’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조차도 웨이터에게 기꺼이 야광 팔찌 없는 손목을 잡혀주고 제 발로 따라간다.

친구 A와 나는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소파에 앉아 있다. 스테이지는 썰렁하다. 아무도 없는 스테이지 위에서 한 개당 몇천만원씩 한다는 무빙라이트 조명만 춤추고 있다. 홀을 가득 채운 여자들은 무표정하게 스테이지를 바라보며 부킹을 기다린다. 아직 부킹이 뜸한 시각, 웨이터들이 지나갈 때마다 다들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신경을 쓴다.

부킹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인상이다. 웨이터가 여자를 남자 옆에 꾸욱 눌러 앉히면 3초 내로 판가름이 난다. 여자가 남자를 별로라고 판단하고 바로 일어나 퇴장하는 걸 ‘스프링’이라고 한다(스프링처럼 자리에서 냉큼 튕겨져나가는 것 같다고). 나는 스프링을 할 때 최소한 “재밌게 노세요~”라는 뻔한 멘트라도 하는데, 아무 말도 않고 슥 빠져나가는 여자들도 많은 듯하다. 남자는 여자가 마음에 안 들 때 일부러 술을 안 준다. 너한테는 술도 아깝다, 는 뜻이다. 그러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무안해진 여자들이 알아서 나간다. 여자가 계속 앉아 있고 남자가 그녀의 술잔을 채워줬다면 일단 기본적인 첫인상의 관문은 서로 통과한 셈.

다음은 ‘기본 질문 어택’이다. 언제 왔어요? 몇 살이에요? 학생이에요? 어디 살아요? 나이트 자주 와요? 친구들 몇 명이서 왔어요? 주량 얼마나 돼요? 애인 있어요? 쉬는 날엔 뭐해요? 자리의 주인인 남자 쪽에서 주로 대화를 이끈다. 대화가 재미없어지거나 기분이 상하면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하며 자리를 뜬다. 이곳에서 여자가 “화장실 좀 갔다 오겠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부연 설명이 없으면 ‘난 이제 딴 데 부킹하러 간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새벽 1시쯤이면 다들 술도 좀 오르고 부킹이 한창일 때. 화장실이나 룸에 들어갔다 나오면 몇 발짝 떼기도 전에 웨이터에게 또 붙들려간다. 매번 같은 질문에 조금씩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재미있다. 여기가 아니라면 내가 언제 30대 영업사원과 ‘대한민국 유기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참 연하의 미국 유학생 출신 카투사에게 ‘모든 독자에게 욕 안 먹는 글쓰기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에 대해 토로하고, 남의 회식 자리에 같이 껴서 ‘왕게임’을 하다 벌칙을 받고, 웬 고주망태에게 “제 첫사랑 보라하고 너무 닮으셨어요!”란 말을 듣고, 헬스가 취미라는 환경부 공무원의 딱딱한 이두박근을 만져볼 수 있겠는가?

간혹 내가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단지 누구든 걸리는 여자와 ‘홈런’을 치고 싶은 것뿐인 남자를 지켜보는 것도 신기하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오늘 나랑 같이 있어요’ ‘우리 잘래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빙빙 돌려서 서브텍스트와 메타포로 전달한다. 거절도 마찬가지. 대놓고 ‘너하고는 절대로 안 해!’라고 안 한다(친구가 기다려서 가볼게요, 아 너무 피곤하네요 등의 표현이 주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하고만 어울리려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사실 툭하면 심심해한다. 나이트는 그런 일상에 일종의 청량제다. 평상시라면 당신이 절대 마주칠 일조차 없었을 사람의 곁에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암컷 대 수컷으로서 페로몬과 전화번호를 교환할 수 있는 곳, 그렇지만 숲 속에서 독사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처럼 까딱하다 위험하고 이상한 일 안 겪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아슬아슬한 곳,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그칠지 아님 그 뒤로 뭔가가 시작될지 알 수 없는 곳.

나이트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가수 ‘싸이’가 오래전에 어느 TV 토크쇼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 나이트는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에요. 성인들을 위한 종합 위락시설입니다.” 나 또한 이하 동문이다.

한혜경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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