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했다 돌아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단다. 양치질도 열심히 해두란다. 정부가 ‘권장’하는 신종 플루(H1N1) 예방법이다. 각급 화장실마다 새삼 ‘손 씻는 법’이 내걸렸다.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자.’ 추억도 사치다. 국민을 초등학교 저학년생 취급하는 나라에서 바야흐로 손 씻기와 양치질하기 열풍이 한창이다. 불안감은 모욕감보다 힘이 세다.
“불안감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신종 플루가 유발한 패닉은 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 구실을 한다. 이제 모든 것은 ‘계속되는 불안감’을 과연 어떻게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한국판(이하 )은 9월5일 발매한 최신판(9월호·통권 제12호)에서 ‘플루포비아, 불온한 진실’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드니 뒤클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수석연구원은 26년 전 처음 이름을 알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서 광우병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조류독감, 그리고 신종 플루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을 휘감은 유행병을 둘러싼 사회적 병리현상을 “자본과 음모론이 만난 난치병”이라고 진단한다.
물신주의에 맞서는 최후공간 ‘종이책’“공포의 저울 위에서 모든 질병이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띠는 중요성도 다르다. 왜 유독 조류독감과 돼지독감을 두고 보건담당자들이 그토록 애를 쓰는 걸까? 빈곤국에서는 매년 세균성 혹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만 어린이 약 100만 명, 성인 60만 명이 숨지지만 그렇게나 걱정하기 좋아하는 이들도 이런 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거기에 “인류가 감내해야 할 완고한 모순”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취약하기만 한 우리는 동시에 개별적 존재로서 존중받기를 갈망한다. 뒤클로는 “이처럼 상반되는 두가지 측면 사이에서 중재를 하려면 그 결과(간혹 치명적일 수도 있다)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모든 자동차에 전자통제 장치를 장착해 ‘운전하는 즐거움’을 앗기느니, 차라리 교통사고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못 말리는 속성이란 게다. 뒤클로는 파스칼 프루아사르 파리8대학 교수의 말을 따 “의심할 권리는 중요할뿐더러 건전하기까지하다”며 “하지만 행여 이 권리가 공포에 잡힐 의무로 변질된다면 새로운 논리, 즉 역사의 암흑기에 걸맞은 논리가 펼쳐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젓한 말이다.
출판인 세드릭 비아지니와 기욤 카르니노가 쓴 ‘물신주의에 맞서는 최후 공간 종이책의 미래를 지켜라’는 독자들의 토론을 부를 만하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디지털화하겠다’는 구글의 야심찬 계획에 반대해온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이 태도를 바꿔 소장도서 디지털화와 관련해 구글과 협상을 했다는 발표가 나온 게 지난 8월 중순이다. “종이책은 선형성과 유한성, 물질성과 현존성의 차원에서 속도 숭배와 비판력 상실을 저지하는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두 사람의 주장에는 선선히 동의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독서는 더욱 분할되고, 조각나며, 분절된다”거나 “능수능란한 정보력에 의해 대체된 인지 능력의 해체를 목격하게 될 것”이란 묵시록엔 선뜻 고개를 주억거리기 어렵다. 전자책 열풍의 배후에 숨어 있는 거대한 상업주의의 욕망도 경계는 해야겠지만, ‘세계도서관’이란 꿈과 인터넷이 만들어가는 개방과 소통, 공유와 참여의 ‘공론장’에 대한 기대감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쌍용차 노조 파업 ‘나눔의 연대기’9월호엔 세 편의 ‘인간 예찬론’도 실려 있다. 오는 10월7일로 42주기를 맞는 ‘혁명의 아이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기리는 아메드 벤 벨라 알제리 초대 대통령의 ‘체 게바라를 위한 변명’과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한국사)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쓴 ‘한 세기를 열고 닫은 김대중’은 묘한 대구를 이루며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울림을 준다. ‘산 자’(비해고자)로서 쌍용차 노조의 ‘옥쇄파업’에 동참했던 한 노동자의 증언도 자본이 강요한 ‘악마의 맷돌’을 밀어낼 나눔의 연대기로 손색이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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