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세 번째 책 (도서출판b 펴냄)이 출간됨으로써 현 일본 최대 비평가의 주요 저작을 이제 우리말로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민음사·1997)을 필두로 하여 소개된 그의 저작은 단행본만으로 열네 권이 나온 상태다. 앞으로 개정증보판이 추가로 번역될 예정인데, 한 비평가의 저작이 이만한 규모로 국내에 소개된 일은 극히 드물다.
국가나 네이션은 경제적 문제‘비평가’라고 했지만 사실 가라타니의 작업은 문학비평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분야를 아우른다.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그의 출세작이 이었으니 출발점부터가 조금 달랐다. 그가 ‘사상가’라는 타이틀로도 불리는 이유인데, 실제로 영어권에 소개된 과 은 모두 서구의 철학사상과 대결하는 저작으로, 독특한 재해석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칸트와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교환양식을 통한 네이션과 국가 체제 해명은 가라타니의 고유한 기여로 평가된다.
은 가라타니 자신이 전폭적으로 개고(改稿)하면서 의 ‘속편’이라고 부른 책이다. 그는 에서 자신의 이론적 주장을 일반 독자들을 위해 간결하게 정리한 바 있으므로 이 세 저작을 한데 묶어서 읽어보아도 좋겠다. 가라타니의 핵심적인 주장은 ‘서설- 네이션과 미학’에서 잘 제시된다. 흔히 국가나 네이션(민족 혹은 국민)을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데 반해 그는 경제적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그가 도입하는 것은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이다. 그는 ‘상품교환’ 외에 ‘수탈과 재분배’, ‘호수적(호혜적) 교환’, 그리고 ‘자발적인 상호교환’이라는 네 가지 교환양식을 구분한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근대국가에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봉건국가적 교환양식이 남아 있다. 다만 국민의 납세와 관료에 의한 재분배라는 형태로 변형돼 있을 뿐이다. 그리고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른 네이션도 기본적으론 호수적 교환관계에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네이션-스테이트’(국민국가)가 형성되었다고 하지만, 가라타니는 이 세 가지가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묶여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구성한다고 본다. 이때 국가(스테이트)와 자본(시장사회)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네이션이다.
가라타니의 독특한 착안은 이 세 항의 관계를 칸트의 비판철학을 구성하는 세 항과 연관짓는 것이다. 칸트는 이성과 감성이 상상력에 의해 매개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이성과 감성이 종합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가능성은 상상(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상상력은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도덕법칙과 연결되기에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라”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타인을 수단으로서만 다루는 정치·경제적 상태를 폐기하라는 지상명령을 함축한다. 그런 점에서 가라타니는 칸트가 ‘독일 최초의 진정한 사회주의자’란 별칭에 값한다고 본다. 단, 이때의 사회주의는 국가 사회주의와는 다른 ‘어소시에이셔니즘’(associationism)이다.
개인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찾아가라타니는 헤르더나 피히테, 그리고 헤겔과 같은 낭만파 철학자들이 칸트의 어소시에이셔니즘을 부정하고 그것을 내셔널리즘으로 전환시켰다고 본다. ‘칸트 대 헤겔’이라는 철학사적 구도를 ‘어소시에이셔니즘 대 내셔널리즘’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그가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근대국가 체제를 넘어 세계시민주의로, 세계공화국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칸트적 이념이다. 칸트는 국가나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계속 찾았다고 한다. 가라타니의 이론적 작업 또한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 듯하다. ‘칸트 그 가능성의 중심’을 통해서 네이션을 사고하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현 단계다.
로쟈 인터넷 서평꾼·blog.aladdin.co.kr/mr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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