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아는 음식도 가끔은 망친다. 얼마 전에는 성에 차지 않는 애호박젓국을 만들었다. 애호박젓국은 볶음과 국 사이의 자작한 국물이 있는 밥반찬이다. 이 따뜻한 반찬을 흰밥에 수북이 올리고 달달한 국물을 몇 숟가락 뿌린 다음 고추장을 찔끔 넣고 촉촉하게 비벼 먹으면 맛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고 믿는다. 들어가는 재료는 딱 네 가지. 들기름 조금에 양파 반 개와 애호박 한 개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새우젓으로 간하면 끝이다. 애호박과 새우가 둘 다 제철인 여름에 육젓을 넣어서 끓이면 제일 맛있다.
이 쉬운 음식에 내가 굳이 보태는 수고는 하나다. 애호박에 칼을 대서 반달 모양으로 자르는 대신, 얇은 숟가락 끝을 애호박에 집어넣고 지렛대처럼 당겨서 한입 크기로 툭툭 떼어내듯 손질한다. 조리 도구라고는 손도끼 하나와 냄비 하나밖에 없는 사람처럼. 일부러 투박하게 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글우글한 애호박 표면으로 간이 불규칙하게 들어 식감과 맛이 덜 밋밋하다. 너무 균일하게 펼쳐진 수제비보다 어디는 두껍고 어디는 얇은 수제비가 더 맛 있듯이.
이 간단한 과정을 다 똑같이 밟고도 그날은 잘못된 길을 갔다. 뜨끈한 국물을 많이 먹고 싶은 욕심에 물을 양껏 넣었다가, 애호박이 물에 둥둥 뜨는 모습을 보고 식겁해서 새우젓을 두 배로 넣었다가, 간을 보니 소스라치게 짜길래 뽀얀 국물을 급히 덜어내고 맹물을 부어 간을 맞추었다. 짜기는 여전히 짜고 감칠맛은 반쯤 사라진 맹맹한 탕, 불 끌 타이밍을 한참 지나 물러버린 채소가 들어 있는 그 국을 냄비째로 식탁에 두고 밥을 말아서 후루룩 비웠다. 맛만 좋구나. 뱃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아. 남이 할 때는 한 번도 믿은 적 없는 거짓말이 절로 나왔다. 남이 아니라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번에 망쳤으니 다음번엔 다를 것이다. 계량하면 해결될 문제를 감으로 돌파한 사람에게 종종 ‘손맛이 있다’고 한다. 음식은 과학, 그중에서도 화학이며 원하는 만큼 정밀해질 수 있는 영역이다. 낭만적이고 주술적인 의미를 걷어내고 본다면 ‘손맛’이란 단어는 망할 위험이 있는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을 향한 애정과 존경의 표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시대에도 누군가는 직접 글을 쓰는 손맛을 즐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일주일에 세 번, 글쓰기 수업에서 매주 확인하고 있다. 반듯한 단행본도 하나 없던 작가의 글방에 대체 누가 오려나 걱정했지만 글방은 올해로 무사히 5년째를 맞았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온다. 요즘엔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자기 이야기가 세상에 내놓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니 놀랍다는 내면과 외면의 비아냥을 일출 같은 상수로 두고 사람들은 계속 글을 써서 온다. 글방에 모이는 글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다. 이를테면 엠비티아이(MBTI)는 나 따위가 거스를 수 있는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 같은 것.
최근 몇 년 사이 챗지피티와 나눈 대화 내용이 글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다면 AI로 쓴 글을 글방에 가져오는 사람도 있을까? 아직까지는 AI 특유의 미끄덩한 문체와 마주친 적은 없다. 물론 나왔는데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사람이 쓴 글과 AI가 쓴 글을 언제나 구별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이득이 글방엔 없기 때문에 마음이 비교적 편하다. 글방은 작가 양성소가 아니다. 글이 있다면 읽고 얘기할 뿐, 어떤 자격증도 증명서도 발급하지 않는다. 발급한다 한들 글방에 다녔다는 사실이 뭘 보장해줄까 싶어 벌써 무안하다. 글방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갑자기 책을 쓸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서로의 이름과 나이와 직업 등을 모르므로 사회적 계급장이 통용되지도 않는다. 속아 넘어가서 줄 자원이 있는 관계가 글방에는 없다.
꼼꼼한 독자가 있다는 것 외에, 글 쓰는 사람의 야심에 걸맞은 보상이 없으면 오히려 쓰는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 투명하게 도드라진다. 대체 왜 쓰는가? 너무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때로 있어야 할 터이다. 쓰는 일이 내게만 좋고 남에게는 하등 좋은 일이 아니라면 쓰기를 멈춰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AI가 내놓는 작업물이 효율성과 완성도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미래가 가까워질수록, ‘내가 재밌어서’를 제외한 쓰기의 이유를 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 재미에는 할 말을 정확하게 찾기 위해 영혼의 바닥을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는 고통도 포함된다. 잘 써서 쓴다는 사람도, 돈을 벌기 위해 쓴다는 사람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쓴다는 사람도, 세상이 그의 이야기를 부르므로 쓴다는 사람도 AI에 양보해야겠지만 내가 재밌어서 쓴다는 사람은 이 손맛을 양보할 이유가 없다. 남이 접어준 종이학에는 아무 기쁨이 없는 것처럼. 그 좋은 걸 AI만 누리라고? 내 창작이 더 이상 세상과 타인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는 좌절 이후에도 누군가는 기어코 쓸 것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쓴 지가 오래됐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종이학을 접고 별을 접고 배를 접었을 때 기뻤듯, 글 한 편의 완성에도 다시 그런 식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적이 있었던가.
대부분의 글은 출고 즉시 무응답의 바다로 나아간다. 타인에게 말을 걸기 위해 쓰고 나서, 타인에겐 응답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점까지 받아들일 때 한 편의 글이 끝난다. 연대도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과 절친해지는 일. 생성형 AI와의 대화가 두려운 이유는 AI가 많은 경우 부정확한 피드백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AI가 ‘바로’ 대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챗지피티와 제미나이에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수많은 답이 있지만, 딱 하나 무응답이라는 선택지가 없다. 무응답은 서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나는 응답이 이토록 많고 당연해지는 달콤한 세계관이 무섭다.
무응답의 시간, 무안함의 시간, 오직 내가 토한 것으로 나를 되먹이는 시간, 그 시간은 괴롭지만 바로 그럴 때 만들어보라고 애호박젓국이 있다. 단맛만 맛이 아니다. 우리는 망친 냄비를 바라보며 의외로 즐거울 것이다. 첨단의 정보를 마다한 채 좌절도 불안도 내 손으로 다루며 분명 기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남을 것이다.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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