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6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의 현대자동차그룹 부스에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광풍이다. 12·3 내란 사태와 시민 광장정치로 출범한 새 정부의 “국민주권” 사회의 약속은 흐릿하고, “AI 기본사회” 공약만이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그도 “모두의 AI”나 “사람을 위한 AI”라는 추상의 정책 깃발 말고는, 사회 약자를 위한 AI의 구체적 쓸모에 대한 논의는 크게 부재하다. 그저 경기침체와 무너진 내수를 살리기 위한 방도로 AI 기술이 일종의 특제 처방이 된 듯하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디서든 AI가 작동할 수 있게 뭐든 송두리째 바꿀 태세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AI 가속 기류에 편승해 던진 몇 마디 언급으로 인해 논란이 크다. 그 배경에는 AI 로봇(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생산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현대자동차의 발표가 있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반응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두고 아틀라스의 생산 공정 투입은 마치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와 같아서 “피할 수 없”다고 평했다. 그는 ‘노사 합의’를 강조한 노조의 대응에 부정적 심기를 내비쳤다.
대통령의 ‘역사적 수레’라는 비유법에는 AI 대세론이 깔려 있다. AI는 역사의 순리와 같아 거부하기 어려우니, 희생이 따르더라도 수용하고 각자 살길을 찾으라는 그의 생각을 담고 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시민의 삶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행정 수반의 발언이라고 하기에 석연찮다. 도대체 무엇이 ‘소년공 출신’ 대통령인 그마저 AI 기술에 대한 균형 잡힌 판단을 어렵게 할까?
무엇보다 그의 발언에는 국가 주도의 기술 부흥을 통한 성장 효능과 성공 기억의 누적치가 꽤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가만 우리의 기억을 되돌려보자.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해 김대중 정부를 걸쳐 노무현 정부에 마무리된 초고속 인터넷 국가망 사업은 ‘인터넷 강국’의 토대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플랫폼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됐다. 그동안 국가 주도형 기술 인프라 사업은 우리를 크게 배신하지 않았다. 국가 주도의 첨단기술 개발 경험은 성장과 발전의 기폭제라는 뚜렷한 기억을 안겼다. 특히 역대 정부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대통령들의 국가 선도형 기술 개발에 대한 집착이 유독 컸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재명 정부는 동일 계보에서 기술부흥론을 잇는 가장 최신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기술관은 ‘기술 낙관주의’라는 주류 시각에 연결돼 있다. AI의 노동 현장 도입은 물론이고 AI의 일상 사회화가 시대 사명으로 강조된다. 그것이 배태할 위협이나 문제는 그저 부산물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AI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이들은 시대착오자나 부적응자로 몰린다. 현대차 노조의 반응이야말로 성장과 번영을 막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노동계의 반응은 산업혁명 시기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과 비슷한 행위로 비친다.
불완전한 기술에 저항하는 누군가를 ‘러다이트’로 보는 주류의 시선은 너무나 단선적이다. 역사적으로, 러다이트운동은 노동조합이나 노동법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공장 기계 도입에 맞서 벌였던 영국 숙련공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었다. 당시 발언 기회조차 없던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효과적인 저항의 선택지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계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 외에 별 신통한 방법이 없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는 의사결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자신의 처지에 분노했고, 기계 예속의 ‘수레’에 짓밟힐 그들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계 파괴’라는 막다른 저항을 표출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노동자의 저항을 강경 진압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고 대거 유배했다. 대화 없는 극단의 해법이었다.
현대차 노동자의 운명을, 주산학원의 수강생처럼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자연스레 도태될 것으로 보는 대통령의 비유 또한 적절치 않았다. 과거 전통적 노동 기능이나 직무 훈련 과정의 소멸과 도태를, 여전히 중요한 제조 생산 기지인 자동차공장 일터에서 벌어질 생존 위기 상황과 동일 선상에서 보기 어렵다. AI 로봇 자동화는 노동자의 생존과 존엄한 삶에 직결된다.
대통령의 러다이트나 주산학원 수강생 비유는 AI에 당장 위협받는 노동자와 시민을 “AI 기본사회”의 능동적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서 우리는 AI 성장의 욕망에 가려 시민 보호를 강조하는 기술 철학이 실종됐음을 읽게 된다. 안타깝게도 기술 앞에서는 평소 그의 노동친화적 발언조차 사라진 채, 소수 대기업 기반 ‘성장주의’에 크게 경도된 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의 산업용 휴머노이드로봇 전문 기업 ‘페르소나AI’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로봇 이미지. 포스코DX 제공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기술 속도와 가속에만 크게 매달리고 있다. 질주하는 기차에서는 멀어지는 후경과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다. 그동안 첨단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혁신으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부메랑이 되어 매우 큰 사회비용을 치르기도 했다. 플랫폼이 만들어낸 새벽 노동 문화, 알고리즘 극우 정치 등은 이제까지 겪은 기술 위협의 작은 징후에 불과하다. 애석하게도 기술이 남긴 사회적 후폭풍은 우리에게 그리 사회적 교훈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의 대체나 소멸을 쉽게 예단하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AI 위협 요인을 살피고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선은 기술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나 무결점의 자동화 환상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다음의 AI 로봇 아틀라스 홍보 문구를 보라. “인간과 같은 이족보행 로봇. 키 190㎝, 56개의 자유도와 360° 회전 관절을 갖고 50㎏ 무게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새로운 작업을 하루 만에 학습하고 배터리 부족시 자가 교체까지 가능하다.” 여기서 AI 로봇은 곧 인간을 대체할 무오류와 무결점의 미래 기술처럼 우리의 심상을 압도한다.
어렵겠지만 기술 숭고나 환상을 털어내야 한다. 현대차 ‘아틀라스 AI 로봇’이건 포스코의 ‘페르소나AI 로봇’이건, 이들이 현재 인간 노동을 대신 하거나 주도해 제조 공정에 투입할 정도의 기술 수준인지를 우리 스스로 따져 물어야 한다. 여전히 AI 로봇 기술은 내재적으로 불완전하다. 이를테면 서비스·디자인·게임 등 인지노동 현장에서 생겨나는 ‘워크슬롭(workslop) 현상’(AI 생성 결괏값이 불완전해 노동자가 뒤처리하는 일감과 시간이 늘어나는 모순된 상황)은 고질적 문제로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
AI에 몸을 입히는 ‘피지컬AI’ 영역도 다르지 않다. 완벽해 보이는 AI 로봇에도 인간의 미세한 수발이 필요할 수 있다. AI 로봇 도입을 계획하는 제조업계조차 그 활용 수준을 인간으로 치면 ‘인턴’ 정도로 본다. 워크슬롭 문제와 유사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바다. 많이들 두려워하는 일자리 대체 효과도 문제지만, 자칫 AI 로봇의 결함과 오류를 인간이 메워야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직무 스트레스가 생기거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AI 도입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평균적으로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기술 자동화의 효율성이 높을 수 있지만, 또 어떤 분야에서는 오히려 그 기술이 비효율적이거나 업무 능률과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미 로봇 자동화 비율이 거의 포화 상태에 있는 국내 자동차 제조 현실에서 AI 로봇을 투입할 때 기업의 단기 주가 상승 외에 우리가 얻을 가시적 생산성 효과가 어떠할지 심각히 따져봐야 한다. AI 로봇의 적용 수준이나 그것이 인간의 노동 안전이나 보건에 미치는 영향력을 철저히 따져 이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AI 기술이 사회 성장에 기폭제로 쓰이도록 유도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AI 기술이 노동하는 몸에 미칠 위협을 최소화하고 그것의 적용, 범위, 방식, 속도, 리듬을 조절하는 데 있다. 기술이 단순히 우리에게 성장의 과실만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AI 노동의 확산은 자동차 제조 공정뿐만 아니라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생존권을 뒤흔드는 중대 사건이다. 그야말로 ‘정의로운 전환’의 문제다.
대통령의 말대로 AI 도입이 “거대한 수레와 같아 피할 수 없”다면, 그저 이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큰 대가나 희생 없이 이를 우리 사회에 ‘정의롭게’ 안착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기후위기에 직면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제조 구성을 바꾸려는 산업 전환을 오래전부터 논의했다. 지역·공장·시민·정부 단위에서 전환의 다양한 숙의 테이블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AI 로봇 산업도 노동권 보장에 근거해 작업장 노조나 산업별 노조 단위의 노사 교섭 테이블에서 자동화 도입 수준이나 범위를 공동 협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낯선 미래일수록 전환의 선진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의 AI 자동화 가속 경향에 맞춰, 노동권 피해를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대비하는 정부의 중재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AI의 수레에 깔려 죽어가는 노동자를 당연시하거나 아니면 영리하게 창업을 새롭게 해보라는 말이, 국정 운영자의 본심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AI가 향후 노동자들의 생존을 조건화하는 기술이라면,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범노동·사회 수준의 논의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현장 노동자들의 우려에 대한 AI 기술 영향 평가나 위협에 국가적 차원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란 정국 이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고통받는 민생의 삶을 회복하는 일이 아니던가. 사람을 향해 무자비한 속도로 돌진하는 AI 수레를 넋 놓고 관망만 해서야 되겠는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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