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2025년 3월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점점 보수주의자가 돼가는 것 같아 어리둥절해진다. 조갑제 옹과 정규재 어르신 말에 격하게 공감하다보니 그렇다. 헌법을 지키고 법과 원칙을 따르자는 보수 가치의 수호자로서 괴로워하는 게 와닿는다. 머리 굵은 뒤로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져본 적 없는 두 사람에게 이토록 친밀감을 느끼다니, 우리가 엄청난 재난의 한복판에 있긴 있나보다.
느리고 답답해도 순리대로 가리라 여기던 기대는 윤석열의 석방으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도처에 ‘윤석열들’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법과 양심과 공적 책임보다는 이익과 자리와 사적 연줄에 지배받는 이들이다. 굳이 풀어주라고 한 판사도, 즉각 항고하지 않은 검찰총장도 이상했다. 그간 본인의 주장은 물론 기관의 처신과도 서로 달라 ‘사맛디 아니’했다.
심우정 총장의 처신은 가장 미스터리다. 끈 떨어질 권력에 이토록 ‘우정 어린’ 검찰이라니.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연속으로 반려한 것도 그의 결정일 텐데, 그 자신이 내란에 깊이 관여돼 있는 게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설사 연관돼 있다 한들 저 살기 위해서라도 이런 티 나는 짓은 하지 않을 법한데. 다른 작동 원리가 있음이 틀림없다. 담합이나 적폐라는 일반명사로 통칭하기에는 너무 성긴, 꽤 정교한 기득권 이너서클이랄까, 생존형 카르텔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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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느낌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치열하게 ‘선을 탄’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부총리에게도 받았다. 꼭 윤석열에게 의리가 있거나 은혜를 입어서도 아니다. 내란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협박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본)다. 본능에 따른 어떤 ‘근성’이다. 자기가 속한, 또는 속했다고 여기는 집단의 이해에 복무하는 근면성실. 덕분에 그 자리까지 간 건지 그 자리까지 갔으니 그래야 한다 여기는지는 모르겠다. 그 집단이 자기를 키워줬으니 지켜도 주리라 믿는 건 분명해 보인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런 ‘준거집단’의 작동 방식을 짚었다. 이른바 ‘동네 괴롭힘’이다. ‘여의도’에서는 조명이라도 받지만 그가 뿌리 내리고 사는 지역에서는 그늘이 더 짙다. 배신자 낙인에 따돌림과 비난, 헛소문까지 돈다. 후원회는 해체 수준이고 그가 과거에 속했던 법무법인마저 존폐 기로에 놓였다고 한다. 후원자들은 사업을 못할 정도로 보복을 당하고 자신은 동네 목욕탕도 못 갈 지경이다. 그야말로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모든 사회적 기반을 붕괴시켜 정치를 그만두고서 돌아가 비빌 언덕마저 없애버린다.
오죽하면 최상목과 심우정이 직무 유기나 직권남용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이런 줄타기를 하겠는가. 보수 정치를 표방하는 여당이 헌법과 법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며 윤석열을 옹호하겠는가.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비겁해지는”(김상욱) 모습을 우리는 놀라움 속에서 목도하고 있다.
사람은 위기 속에서 정체를 드러낸다. 보수 가치에는 관심 없고,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는 나 몰라라 하는 보수 정치인이 누구인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이들이 기회주의적으로 단물을 빨아먹는 생리도 훤히 보게 되었다. 나경원 의원이 주도한 윤석열 탄핵 각하 헌법재판소 청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은 26명이다. 광장의 ‘광기’가 집어삼킨 국민의힘에서 그나마 정신줄 잡은 이들이다. 그중 홀로 끈질기게 윤석열 탄핵을 촉구한 김상욱 의원은 현재로선 보수 정치의 유일한 알리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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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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