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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고 치이더라도 그 별은 샛별


자퇴·출가·방랑의 자전적 일화 담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등록 2008-12-25 16:22 수정 2020-05-03 04:25
<개밥바라기별>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원

황석영(65)씨가 성장소설 을 내놓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했던 이 작품은 주인공 유준의 고교 1학년 시절부터 군에 입대한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성장기를 다룬다. 작가는 이후 새롭게 만난 젊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욕구가 새 작품의 바탕에 깔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은 세칭 명문고에 입학했으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준과 친구들의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낙제하거나 결국 퇴학까지 당하는 것은 학교라는 제도의 억압과 허위의식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주인공 유준은 담임교사에게 보낸 자퇴이유서에서 비장하게 말한다.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나갈 것입니다.” 겉으로는 실없는 농담으로 친구들을 웃기며 불량기를 한껏 흘리면서도 실제로는 야무진 독서가이며 몰래 소설 습작을 하고 있는 그는 같은 말을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 거야.”

자퇴와 그 이후의 무전여행, 출가 그리고 떠돌이 노동자를 좇아 노동과 방랑으로 보낸 한 시절 등 유준의 행로는 작가 자신의 그것과 대부분 겹친다. 작가는 7월30일 열린 출간기념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은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었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 과거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작가가 된 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황석영(65)씨

황석영(65)씨

제목으로 쓰인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의 다른 이름이다. 금성을 일컫는 별칭으로는 ‘샛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샛별은 새벽 하늘에 처음 뜬 금성을 이르는 말이고 개밥바라기별은 저녁 하늘에 뜬 금성을 가리킨다. 이 이름을 알려준 인물은 유준이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붙들려간 유치장에서 만난 떠돌이 노동자 ‘대위’였다. “잘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270쪽) 그러니까, 쏠리고 몰리더라도 본질에서는 개밥바리기별이 곧 샛별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라 하겠다.

대위를 따라 전국을 유랑하면서 이런저런 품팔이 노동에 종사했던 경험은 같은 작가의 대표 중·단편 소설을 낳았다. 소설 속에는 또 작가의 고교 시절,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을 비롯해 (假花), (歌客), (羽化) 등 초기 습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신인문학상 수상작을 어머니에게 읽어드리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다. 총명한 장남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아들이 밤마다 끼적이며 써두었던 소설 원고를 아궁이에 집어넣어 불태워버린 일도 있지 않았겠는가. ‘젊은 시절 언제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애틋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bong@hani.co.kr

* 2008년 7월31일치 21면에 실린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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