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해야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이, 스무살의 방황을 다룬 4권의 책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지금은 스무살의 계절이다. 수능시험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술집에서, 추운 거리에서, 논술학원에서 스무살의 창백한 첫 얼굴을 본다. 스무살. 당신의 스무살은 어떠했는가. 지나온 길은 모조리 지워졌고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 나이, 맥박이 기관차처럼 질주하는 나이, 세상을 신념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나이, 계산 없이 사랑하는 나이.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스무살은 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히 숭배된다. 즉, ‘스무살의 낭만’은 부재함으로써 신화가 된다. 진실은 여기에 있다. 스무살은 지겹다. 열아홉의 어제나 스무살의 오늘이나 삶은 늘 지루하고 막막하다.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특별한 점은 오직 하나, 아이는 자신을 부정하며 어른이 된다는 것. 스무살의 자기 부정이라는 혹독한 전투를 책을 통해 살펴보자.
선로에 뛰어든 전공투 세대
광고
(다카노 에쓰코 지음, 김옥희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은 지은이 다카노 에쓰코가 스무살이 되던 1969년 1월부터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한 6월까지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1969년 일본은 지구의 절반을 뒤흔든 ‘68혁명’의 자장 안에 있었다. 이상주의가 캠퍼스를 어슬렁거렸다. 대학에 기동대가 투입되고 강의실의 책상은 바리케이드로 쓰였다. 전공투(전학공투회의)니 민청(일본민주주의청년동맹)이니 하는 조직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 혼란 속에 던져진 스무살의 다카노 에쓰코는 누구에겐가 고백하듯이 일기를 써내려간다. 일기란 원래 타인에게 읽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는 스무살의 원점을 “혼자라는 것, 미숙하다는 것”으로 정의 내린다. 뭔가를 이해하고 어떤 행동이든 해야 할 시점이지만, 문제는 도대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그래서 에쓰코에게 스무살의 자유는 담배와 안경 같은 것들로 상징된다. 담배는 ‘착한 아이’라는 가면을 벗게 해주며, 안경은 타인이 자신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해준다. 살아 있으면 50살이 넘을 나이지만 일기 속에는 스무살의 ‘귀여움’이 그대로 살아 있다(짝사랑하던 아르바이트 직장 상사가 머리를 쓰다듬자, 오늘은 머리 감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자!). 그런데 놀랍게도 자살은 방황할 때가 아니라 어딘가로 맹렬히 돌진할 때 찾아온다. 4월 이후부터 일기 속에는 독점자본, 국가권력, 계급투쟁 같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투쟁을 위해 가족, 사랑 같은 ‘부차적인’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가 현실 속으로 돌진할수록 현실은 그와 멀어진다. 그러므로 종착역은 벼랑 끝이다. “하지만 나는 지쳐버렸다. 나에게 남은 건 오직 계급투쟁뿐이다.” 그의 말대로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고, 진하게 살수록 줄어드는 법이다.
광고
(전경린 지음, 문학동네 펴냄)은 에쓰코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1980년대 한국의 스무살에 대한 소설이다. 주인공 우수련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던 스무살 여자애”다. 그의 가는 발목에 둘러쳐진 사슬은 ‘가족’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방에는 자궁암의 역한 냄새가 났고, 실직한 아버지는 그에게 책임만을 강요했다.
소설의 중심에는 우수련이 대학동기 성재와 연극연출자 해경과 맺는 관계가 놓여 있다. 우수련의 첫사랑 성재는 학생운동권으로 순결한 이념을 갖고 있다. 그 이념이 수련을 불안하게 한다. 결국 첫 섹스를 하기 위해 성재의 하숙방을 찾은 수련은 노트를 보고 얼굴이 노래져 “너 사회주의자니?”라고 묻고는 방을 뛰쳐나간다. 성재를 통해 만난 해경은 전문대학 교수인 아내에게 운영비를 타내 근근이 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사내다. 아내가 지배하고 있는 그의 인생은 비굴하고 초라하다. 성재의 이념도 해경의 ‘묵묵한 삶’도 모두 불완전한 ‘새장’일 뿐이다. 성재는 경찰에 구속되고 군대로 끌려간다. “아내에게서 그를 구해내자”는 단원들의 ‘공모’를 계기로, 해경은 수련과 밤을 보내고 아내에게 이를 들킨다. 그가 준비하던 연극이 공안당국을 자극해 감옥으로 끌려간다. 그 두 남자 사이에 “세계와 나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괴리”를 느끼는 수련이 있다. “스무살이 인생이 되게 하지는 말아라. 스무살은 스무살일 뿐이야. 삶으로 끌고 가지는 마.” 해경의 말은 소설의 결론과도 같다.

광고
김연수의 소설집 (문학동네 펴냄) 중에서 좋게 말하면 가장 솔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가장 평범한 단편이 이다. 소설 속의 스무살은 극에 달하는 것, 강렬한 삶의 경험, 죽도록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는 나이다. 1989년 스무살의 해에 열사의 죽음으로 투쟁은 극에 달하고, 학생운동 정파간의 대립도 극에 달했다. 죽도록 사랑하기만을 원했기 때문에 연애는 싱겁게 끝났다. 주인공은 “생에서 단 한번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별들처럼” 그에게 다가온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생에서 단 한번 가까워지는 사람들. 그래서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살 이후가 온다.”
김연수의 스무살은 전경린의 스무살과 다르다. 은 이를 악물고 스무살의 상처를 봉합하며, 그 시절에 결별을 고한다. 은 80년대 젊음의 기억을 마음의 도서관에 영원히 봉인해놓는다. 가장 90년대적인 공간, 대학로에서도 스무살의 파편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작가 김연수에게는 현실로서의 80년대가 있고 그림자로서의 90년대가 있었던 셈이다. 스무살은 결코 작가를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그를 물어뜯는다. 그것이 이 소설집의 가장 재미있는 점이다.
당신의 스무살은 어떠했는가
(바다출판사 펴냄)은 12명의 만화가가 김광석의 노래를 통해 만나는 스무살의 일상을 그린 단편 모음집이다. ‘만화가’라는 통제 불능의 존재들을 하나의 모티브에 줄세우는 일은 책을 쓰는 것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왜 제목에 ‘스무살’이 붙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산만하고 작품의 수준도 들쑥날쑥이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스무살의 눈에 비친 현실의 모습을 다양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다. 입시에 떨어지고 자살을 시도한 뒤 김광석의 음악 CD를 다시 듣게 된 남학생(이유정 ), 멋진 여자친구와 햄버거를 먹는 옛 애인의 쓸쓸한 모습(박희정 ), 어울리지 않는다, 이기적이다, 뒤통수가 싫다 등 온갖 이유를 대며 피하던 남자를 결국 첫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강주 )…. 이런 것이 스무살의 알싸한 기억들이다.
아이는 자신을 부정하며 어른이 된다. 당신의 스무살은 어떠했는가. 당신은 세계의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갈망했는가. 당신은 이제 막 스무살의 습격을 받은 당신의 아이, 후배, 가족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가. 스무살은 무엇인가.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임은정 검사 “즉시항고” 게시글, 검찰 내부망서 2시간 만에 삭제
헌법재판관 3명이 반대? 탄핵 선고 늦어지는 진짜 이유 [The 5]
[속보] 민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3%’ 여당안 조건부 수용
삼가 고(故) 검찰의 72시간 명복을 빕니다
감사원장·검사 탄핵 기각됐지만 “윤석열 탄핵심판 영향 없을 것”
윤석열 탄핵 찬성 58%…중도층은 69% 찬성 [갤럽]
최상목, ‘명태균 특검법’ 거부…2개월 만에 8번째
조갑제 “윤석열 만장일치 파면될 것…기각은 ‘계엄령 면허증’ 주는 꼴”
[단독] 여인형, ‘위헌심판’ 신청 “군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 안 둬”
국민연금, 삼성전자 전영현 이사 선임 반대…“기업가치 훼손 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