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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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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대사

등록 2008-08-01 00:00 수정 2020-05-03 04:25

▣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인권운동을 지속하며 인권을 목 놓아 외치는 건 인권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선 더 인간다운 삶을 꿈꿀 수 없기에, 국가·안보란 이름으로, 사회·경제적 이익이란 미명으로 양보되거나 유보되어선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 외침을 시작한 이래, 세상이 쉽게 변할 거란 기대 따윈 하지 않았다. 다만 공들이고 땀 흘리고 악을 쓴 만큼의 십분의 일, 그것도 욕심이라며 한 해에 한 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올해는 이만큼 왔으니 내년엔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만 있어도 행복한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인권활동가로 살아온 10년, 앞으로 열 걸음 왔기보단 항상 출발점만 맴돈 느낌이다. 인권을 유린당한 채 고통받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은 듯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할 법률과 사회는 오히려 인권을 옥죄는 듯하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는 도무지 어디까지 인권이 후퇴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암흑이다.

뉴라이트 상임대표를 지낸 사람을…

어찌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상위 1%의 삶이 자연스런 대통령에게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의 자업자득’인 서민의 고통이 정책의 핵심이 될 리 없듯, 소싯적부터 신자유주의를 위한 ‘선진화’와 ‘실용’만을 강조해온 대통령에게 민주주의나 인권을 기대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각종 반인권 정책들,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화, 백골단(체포전담반) 부활, 국가형벌권 강화, 대체복무제도의 원점 재검토, 인터넷 실명제 확대 및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임시조치 의무화 등은 ‘설마 여기까지이랴’ 했던 막장이다. 거기에 전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게 계속되는, 아니 더욱 강화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악용,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에 대한 표적 단속, 집회·시위의 자유 제한, 공기업 민영화 및 공공 영역의 민영화,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 등은 이명박 정부가 인권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임을 절감케 한다. 하여 이명박 정부가 인권이라 내세우는 것은 권력과 재력이 있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이권’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의 인권대사 선임은 이를 잘 보여준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대표를 지내며 보수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그는 인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아니 인권의 정반대 자리에 선 인물이라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게다. 쌍수를 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건 기본이고 국가안보와 체제안보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검찰 공안부와 국정원 안보수사국의 선전을 촉구한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파병 및 기한 연장은 “한-미 동맹이라는 국가전략적 고려와 국익”을 위한 일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사학법의 개정은 사학을 전교조의 수중에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뿐이 아니다.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막으려는 대표적 사건”이라며 “공산폭동 혁명”이라고 핏대를 세운 것도 그였고, 사법 살인으로 기록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인혁당 재건위의 실체가 있다”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엄청난 조작으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파한 것도 그다. 촛불집회의 배후에 친북 좌파세력이 있다고 주장·선동하는 것도 최근 그가 하는 일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인권이 유린된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이 아니다. 국가와 안보를 부여잡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인권은 거추장스럽거나 언제나 희생되고 내던져질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인권을 보장하라는 주장은 북을 향할 땐 유효하지만, 우리 사회 속에선 국가와 안보를 위협하는, ‘빨갱이’의 소행을 의심해야 할 선동일 뿐이다. 이렇듯 인권 개념은 물론 역사의식과 통찰력까지 없는 인물의 인권대사 선임은 현 정부의 인권철학과 정책의 향배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권’이 ‘이권’으로 탈바꿈되는 시대

인권이 가진 자들의 수사가 되고, ‘이권’으로 탈바꿈되는 시대에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희망을 만들고 인권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인간답게 살기를 꿈꾸는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 연대함을 통해 희망을 만들며 함께 외칠 때만이 스스로의 존엄을, 빼앗긴 인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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