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김천수, 배석판사 홍예연·최윤정)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앞으로 오랫동안 법조계·의료계·종교계가 함께 고심하게 될 문제였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법원이 인정한 국내 첫 사례다.
김아무개(76)씨는 지난 2월,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저산소성 뇌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됐다. 넉 달 뒤인 지난 6월, 김씨와 그 자녀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서부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헌법 10조가 보장하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따르면 생명 유지 치료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강요하고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할 때는 환자가 의사의 치료를 거부할 수 있고, 병원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이 특별한 이유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선택권’을 인정했다는 데 있다. 재판부는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권리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평소 언행을 통해 존엄사 선택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록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자신의 뜻을 밝힐 수는 없지만,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더라도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는 김씨의 평소 발언이나 생활태도 등을 종합해볼 때, 의식이 있었다면 치료를 거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서구의 경우, 존엄사 또는 안락사는 수천 년에 걸친 논쟁을 거쳐왔다. 적어도 존엄사 문제에 한하자면, 한국은 이 판결을 통해 이제 막 ‘근대’로 접어들게 됐다.
엄밀하게 보아 존엄사와 안락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좋은 죽음이라는 뜻의 ‘유타나시아’(Euthanasia)는 보통 안락사로 번역되어 쓰인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처음으로 이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1930~40년대 독일 나찌가 ‘안락사’의 개념을 원용해 인종학살을 벌인 뒤, 안락사라는 용어는 부도덕한 의료 살인의 다른 말로 취급됐다. 1960년대 이후 세계의 인권운동가들은 ‘죽을 권리’(Right To Die)라는 구호를 새로 들고 나왔고, 국내에서도 최근엔 ‘존엄사’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서구에서 존엄사 문제가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된 데에는 인본철학과 기독교 사이의 줄기찬 대립이 놓여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자살을 통해 불명예스런 상황과 치명적 질병의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고귀하고 영웅적 행위”라고 말했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도 “적절한 시기에 죽음을 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권리”라고 평했다. 이들은 생명을 끝내는 개인의 선택권을 지지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 모든 형태의 자살은 종교의 이름으로 금기시됐다. 불치의 병과 그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도 ‘자살’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환자의 극심한 고통이 속죄와 관련이 있다는 종교적 믿음도 작용했다. 17세기 영국 국교회 주교였던 제러미 테일러는 “병은 영광을 얻기 위해 인간이 치러야 할 고통”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프랑스대혁명과 함께 뒤바뀐다. 볼테르·몽테스키외 등 계몽주의자들은 자살을 개인 자유의 문제로 봤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자살은 개인의 권리”라고 말했다. 종교계와의 논쟁은 계속됐지만, 20세기 초반까지 이런 태도는 비교적 확산되는 추세에 있었다. 1870년 영국에서 발행된 이라는 잡지는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고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기독교가 안락사를 살인으로 규정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 내용을 실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안락사에 대한 지지 여론은 20세기 초반, 극단으로 치달았다. 독일 의학자들이 1920년 출간한 가 대표적이다. 우생학의 철저한 신봉자인 이들은 불치병 환자와 심신장애자의 안락사를 지지하면서 “그들의 죽음은 돌보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며, 환자 스스로도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썼다. 우생학과 인종적 편견이 만나면서 나치의 대학살이 탄생했다.
1870년 기독교 비판, 20세기 초 우생학이 무렵에 최초의 안락사 찬성 단체들이 탄생한 것은 ‘존엄사 찬성자’들에겐 다소 부끄러운 과거다. 1935년 만들어진 영국의 ‘자발적 안락사 합법화 협의회’, 1938년 창설된 미국의 ‘안락사 협의회’ 등은 당시 학계를 휩쓸었던 우생학과 아주 무관하진 않았다. 이 때문에 나치의 악몽이 세계를 휩쓴 1940년대 이후 안락사 합법화 운동은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이를 새롭게 불러온 것은 1960년대의 전세계적 자유민권 운동이었다. 이들은 지배자의 우생학이 아닌 소수자의 인권에 바탕을 두고 존엄사 문제에 접근했다. 각종 안락사 관련 단체들도 대대적 개편 또는 분화를 통해 ‘죽을 수 있는 권리’ 또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중심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존엄사 운동의 진정한 탄생이 이때 이뤄졌다. 1980년에는 18개 나라 27개 안락사 단체가 연합한 ‘죽을 권리 협회들을 위한 세계 연합’이 결성됐다.
존엄사 반대론의 둥지였던 종교계도 변화를 겪었다. 반대 이유로 영혼의 구원 등이 아니라, 생명의 보편적 존엄성을 내세우고 있다. 존엄사에 대한 환자의 선택이 죽음과 고통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한다는 점에 착안해 고통 완화 치료 등의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죽을 권리의 합법화는 고통 경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존엄사 선택을 부추기게 되고, 결국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하락시키게 된다는 이들의 반론은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통증 완화 치료를 보장받기 전에는 조력 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다.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에는 현대의학의 발전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예방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물론, ‘소생의학’의 발달로 불치병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길이 열렸다. 1950년대부터 본격화된 소생의학은 처음에는 소아마비 환자, 급성신부전 환자 등에 대한 치료법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그냥 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소생의학의 발달은 안락사를 세분화했다.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을 유지해주는 호흡장치·영양튜브 등 의료장비의 연결을 환자의 뜻에 따라 끊는 것을 말한다. 보통 ‘존엄사’라고 할 때는 이런 소극적 안락사를 칭한다. 서울서부지법의 판결도 이에 해당한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의사가 치사량의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환자의 요청 없이 의사가 이를 결정하는 것도 ‘적극적 안락사’에 포함된다. 다만 의사가 결정적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환자가 요청했을 경우엔 ‘조력 안락사’라고 하여 구분한다.
네덜란드·벨기에 조력 안락사도 허용현재 이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다. 네덜란드는 2000년, 벨기에는 2001년에 자발적 안락사와 조력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었다. 네덜란드가 존엄사를 합법화한 배경은 특이하다. 1990년대 내내 환자의 적절한 동의 절차 없이 수천 건의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인권단체들이 관련 입법을 통해 안락사를 투명화하자고 주장했다.
두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존엄사 또는 안락사는 아직 ‘법외’ 지대에 있다. 영국은 관련 법령 제정 운동이 처음으로 펼쳐진 1936년 이후 적어도 6차례 이상의 법 제정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부결됐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96년 안락사 법을 만들었다 6개월 만에 폐기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안락사 자체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미국은 그 중간지대에 있다. 40개 주에서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오리건주는 예외다. 1998년부터 ‘적극적 안락사’의 하나인 의사에 의한 조력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불치병 환자에게 치명적 약물을 혼합해 처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법 시행 첫해인 1998년에 16명이 이를 통해 죽었다. 2001년에는 그 수가 90여 명으로 늘었다.
오리건주 법에 따라 지정된 존엄사 요청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에 나는 내 담당의사가 본인의 생명을 인간적이고 존엄하게 끝맺는 데 사용될 약물을 처방해주길 요청합니다. 나는 어느 때건 이 요청서를 철회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처방받은 약을 투여했을 때 내가 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제출한 환자에겐 17일 동안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한국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첫걸음을 겨우 뗀 상태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관심이 촉발되긴 했지만, 관련 법안 제정 등의 논의로 확산되진 못했다. 당시엔 회복 가능성이 낮은 남편에 대한 부인의 퇴원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의사들까지 ‘부작위 살인죄’로 기소됐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도 존엄사는 그리 낯설지 않다. “집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환자 가족의 요청은 대부분 수용된다. 2001년 제정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강령에도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인간답게 자연스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을 엄밀하게 적용할 경우 이런 행위는 형법상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에 해당한다.
서울서부지법의 판결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2월1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쪽은 상고를 결정했다. 비상상고를 통해 대법원에 바로 판단을 묻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김씨와 가족 등이 이를 거부해 2심을 거치게 됐다. 어떤 결정이 나건 항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결국은 대법원의 판단까지 나올 가능성이 높다.
1심 판결에서 원고의 승소를 이끈 신현호·백경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전후해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를 계기로 생명 유지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규정하는 법적 요건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법령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12월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존엄사 허용’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 의원실 관계자는 “생명 유지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어려우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법안 제정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존엄사 논쟁은 지금부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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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험프리 지음·김종연 외 옮김, 지상사 기독교윤리연구소 펴냄, 예영 커뮤니케이션 미셸 오트쿠베르튀르 지음·김성희 옮김, 민음 바칼로레아 이안 다우비긴 지음·신윤경 옮김, 섬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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