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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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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치의 씨앗들

등록 2012-09-21 15:42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2004년이었던가 보다. 그해에 민주노동당이 첫 원내 진출을 했다. 당시도 민주노동당원이 아니었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전체의 대의를 위해 차선의 활동이라도 한다는 마음으로 지원활동을 조금 했다. 당시 내 역할은 문화예술인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문화예술인이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라 나름 소중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당시 근 보름 하던 일을 작파하고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던가 보다. 그렇게 해서 800여 명에 이르는 지지 명단이 모였다.

“볼셰비키의 친구로 남고 싶다”

그 과정에 기억나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의외로 진보정당 지지자가 꽤 있었다는 것이다. 개중엔 당원도 여럿 있어서, 아니 당원인 당신이 내게 지지 부탁을 해야지, 역할이 바뀐 게 아니냐고 뼈 있는 농담을 했던 기억도 난다.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 왜 당에서 자신들의 당원을 챙기지 않는지, 왜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의 주체로 호명하고 세우지 않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그 뒤로도 그런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잘 듣지 못했다. 둘째로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둘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지지선언에서는 오히려 빠진 이들이었다. 한 사람은 지금도 철도노조에서 현장활동가로 드러나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다. 세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많은 이들이 앞다투어 현장을 떠나던 1990년대 초반, 오히려 평생 노동자로 살 것을 결의하고 철도노동자로 들어갔다. 전날 지지선언에 함께하겠다고 했던 그가 다음날 아침 일찍 초췌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밤새 잠 못 이루고 고민했는데, 지지를 철회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까닭을 묻자, 간결하게 “아직은 볼셰비키의 친구로 남고 싶다”는 거였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은 레닌주의자에서 자율주의자로 입장 전환을 했기에 중앙집중적 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분명한 까닭을 얘기하며 지지선언 동참을 거부했다. 희한한 것은 이런저런 정세에 따라 슬며시 이름 하나를 내놓는 수많은 이들보다 그 두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대세에 흔들리지 않고 세계에 대한 확실한 자기 주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이 오히려 노동해방·인간해방 운동의 벗들 같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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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억나는 한 부류의 사람들은 교사이자 문화예술인인 이들이었다. 교사 공무원의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사실 공개적으로 이름 내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반쪽의 사람들만이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발표를 하던 날, 교사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로 함께하면서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며 울컥했던 생각이 난다.

짧은 에피소드지만, 분단사회 반공국가에서, 최소 민주주의의 요건도 갖춰지지 않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부자만 됩시다라고 노골적으로 선전·선동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메시아가 아니라, 노동자민중 후보

그런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희생, 투쟁으로 일궈온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현재의 통합진보당 사태까지를 거치며 거의 거덜났다는 평가들이다.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보자고 지난 10여 년 비정규·정리해고 투쟁 현장에서 다시 목숨 걸고 싸워왔던 현장 노동자와 동지들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현장활동가 모임’이라고 한다. 어떤 메시아가 아니라, 다시 노동자민중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결의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싹이 어떻게 우리 사회 모두의 기둥으로 다시 자라날지, 함께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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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의 ‘노땡큐!’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과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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