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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생 최진실

등록 2008-10-30 10:46 수정 2020-05-03 04:25

최진실씨가 스스로 딴 세상으로 떠났다. 그로 인해 한창 떠들썩한 세상을 보면서 전혀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어쩌면 386 삶의 모델 전체가 막다른 골목에 왔다는 것을 증후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386 모델 전체가 막다른 골목으로

대량소비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돌로서 미국에 메릴린 먼로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최진실씨가 있었다. 대량소비 사회 이전의 자본주의 사회에는 대부분 검약이라는 미덕과 가족적 가치 그리고 성적인 절제와 근면을 이상화하는 노동 윤리 등이 하나로 엮여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른바 ‘포디즘’의 대중소비 시대로 들어가게 되면 이러한 윤리적 코드는 모조리 진부하고 따분한 것으로 느껴지게 마련이고, 이 하나하나를 정반대로 뒤집은 부담 없는 사치, 가족적 윤리의 해방, 자유분방한 연애, ‘잘 노는 사람이 짱이다’ 등이 새 시대의 미덕으로 떠오르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초. 저 촌스럽던 80년대의 한국 사회가 한국식 대중소비 시대라는 또 하나의 촌스러운 시대로 들어서던 무렵이었다. 군부독재도 끝나고 임금 상승과 경기 호황이 겹치면서, 가전제품을 필두로 온갖 상품에 대한 갖가지 소비 욕구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문화적 흐름에 요정같이 상큼한 이미지의 최진실씨가 CF에 TV에 스크린에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은 것이다. 좀 엉뚱하지만 마침 공산주의도 무너졌다. 그간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무거운 구름에 한껏 억눌렸던 ‘이드’의 폭발적 분출을 겪던 당시 20대 중·후반의 386들은 차인표가 “그대 가슴에 별을” 달아주던 최진실씨의 발랄함에 걸려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큰 차이도 있었다. 부담 없는 쾌락을 상징하던 미국의 메릴린과는 달리 박중훈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였던 한국의 진실씨는 결혼의 환상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당시 막 사회로 진출하며 혼기를 맞기 시작하던 386들은 자신들(혹은 자신의 배우자들)의 이미지를 최진실씨에 투사해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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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최진실이라는 아이콘을 통해 자신의 미래 이미지로 형성했던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좋은 차와 좋은 아파트, 최신 가전제품의 소비 생활을 구가한다. 발랄하고 예쁜 아내를 ‘거느리고’ (혹은 그런 아내가 되고) 귀여운 아이들을 키우며 단출하게 살아가는 핵가족 생활이다. 환경은 쾌적하고 삶은 재미나고 미래는 안정돼 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386들은 또 땀냄새 풀풀 나게 달리고 또 달렸다. 게다가 최진실씨도 힘겨운 성장 배경과 알뜰한 살림 등 온갖 사연을 가진 이가 아니던가. 김민석, 임종석 등은 이미 어제의 이름이요 딴 세상 사람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386들에게 진정한 동시대인은 최진실씨였다.

최진실에게도 ‘행복한’ 삶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악바리 같은 그녀는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성공한 연예인이었고, 이혼 뒤 최근 재개한 활동에서도 확실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떠나고 말았던 것을 보면 가족 생활에서나 그 밖의 여러 면에서 이루 말 못할 고통이 많았던 모양이다. 386들이 최진실을 보며 환상을 가졌던 ‘행복한’ 삶은 최진실에게도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이 어쩌면 지금 386들의 삶의 황폐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묵시가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에 흠칫하게 되는 것이다. 90년대 호황기에 사회에 진출해 자리도 잡고 일찍 결혼도 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도 대충 비껴가면서 원래 꿈꾸던 행복의 모습에 가장 근접했던 세대가 386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물질적 풍족은 복부 비만만 가져올 뿐, 삶은 여전히 공허하고 황량하다. 가족도 ‘애새끼’도 따뜻한 안식처라기보다는 한없는 부담이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건강은 자신 없다. 그래서 모두 보험과 연금의 계산서로 변해 매달 벌금을 뜯어간다. 마음속 깊이 품어보았던 새 사회의 ‘희망’마저 노무현의 ‘희망 돼지’와 함께 처참히 구겨지고 이명박에게마저 조롱을 당하는 꼴이 됐다.

최진실씨도 나도 68년생이라고 한다. 노을 진 동네 강둑에서 맨발로 잠자리 잡던 그 꼬맹이 아이가 혹시 그녀였을까. 잘 가라 진실아. 고단하지 않은 그 강둑 노을 속에서 맘껏 행복하기를.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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