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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시대, “제 장래희망은 하인입니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로 읽는 성장 강박 사회와 작아지기의 욕망
등록 2026-06-11 21:32 수정 2026-06-14 14:59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에서 야콥이 벤야멘타 원장을 따라 사막으로 떠나는 장면을 스케치로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에서 야콥이 벤야멘타 원장을 따라 사막으로 떠나는 장면을 스케치로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학창 시절 학교에서는 장래희망을 적어 제출하게 했습니다. 얼마 전 친구들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제가 장래희망을 ‘자유인'이리고 적어 냈다가 선생님에게 무지하게 맞았다고 합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가 적었을 법한 장래희망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대체로 과학자, 의사, 대통령 등을 적어 냈던 것 같습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이유는 비슷비슷했습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부자가 되고 더 유명해지는 것, 말하자면 장래희망이라는 기획이 의미하는 것은 ‘더 큰 사람 되기'였습니다.

 

복종을 배우는 학교

 

모두가 그런 삶을 꿈꾸는 건 아닙니다. 여기 인생의 목표가 ‘좋은 하인 되기’인 사람이 있습니다.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주인공 야콥 폰 군텐은 미미하고 하찮은 존재가 되기 위해 하인학교에 입학합니다. 로베르트 발저가 1909년에 쓴 이 작품은 개인의 자아실현이 요구되는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지 음산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한 젊은이가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 생활하다가 그곳이 문을 닫게 되자 원장 선생님과 함께 사막으로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학교의 풍경은 기묘하고 황폐합니다. 교사들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이고 가르치는 과목은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존재감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입니다. 야콥은 벤야멘타 원장에게 항의합니다. “이곳에서 배우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 더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제 돈을 돌려주세요.” 원장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한번 낸 돈은 환불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충고합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배울 것은 많다.” 곧 야콥은 원장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배우고 부단히 노력해야 가능하다는 것을요.

좋은 하인의 첫째 덕목은 ‘생각하지 않기’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나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을 중지해야 한다고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능력이란 생각할수록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복종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발적 복종기계가 태어납니다.

야콥의 룸메이트 크라우스는 완벽한 복종기계입니다. 이 녀석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이 없습니다. 미미함을 추구한 끝에 인간성 자체가 소멸된 인간입니다.

“크라우스를 칭찬하는 사람은 없어. 그에게는 단지 요구만 할 뿐. 그러고서도 너무나 완벽한 시중을 받았다는 사실을 거의 느끼지도 못해. 그만큼 완벽한 시중을 받은 거지. 인간 크라우스는 의미하는 바가 전혀 없어.”

 

2009년 문학동네에서 홍길표 옮김으로 출간한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 표지.

2009년 문학동네에서 홍길표 옮김으로 출간한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 표지.


자발적 복종의 슬픔

 

벤야멘타 학교에는 신입생이 한 명도 들어오질 않습니다. 더는 하인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습니다. 야콥은 이 학교의 마지막 학생이 됩니다. 야콥은 선택해야 합니다. 구시대에 머물지 계급 질서가 무너진 새로운 세상에 맞서 나아갈지. 야콥은 기꺼이 머물기를 택합니다. 하인학교가 문을 닫자 야콥은 원장을 따라 황량한 아프리카 사막으로 떠납니다.

야콥이 벤야멘타 원장을 따라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자발적 복종에는 강제적 복종보다 더 슬픈 구석이 있습니다. 강제로 복종당하는 사람의 내부에는 자유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복종을 선택한 사람의 안에는 명령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려면 나 대신 생각해줄 명령자가 필요합니다. 야콥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명령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야콥이 유일하게 거부하는 명령은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벤야멘타 원장은 왜 훌륭한 하인의 자질을 지닌 크라우스가 아닌 야콥을 데리고 떠났을까요? 야콥은 이름에 붙은 ‘폰'이라는 글자가 증명하듯 귀족의 아들입니다. 자기 신분에 맞게 살아가려고 하인학교에 입학한 다른 학생들과는 입학의 이유가 다릅니다. 야콥은 ‘작아지기’라는 하인학교의 이상을 온몸으로 구현한 상징입니다.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은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더 크게 느낍니다. 낮은 곳에 머문다면 떨어질 일도 없지요. 귀하게 태어난 아이가 하인이 되었습니다. 하인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벤야멘타 원장은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행군할 병사가 있는 한 나폴레옹은 죽지 않습니다.

극심한 신분 이동으로 상승에 대한 희망과 몰락의 두려움이 교차하던 시대. 개인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불안을 감내하고 큰사람이 되고자 할지, 스스로 미미한 존재가 되어 불안으로부터 도피할지. 크라우스라는 하나의 모범이 있습니다. 크라우스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위 같습니다. 그래서 결코 다치거나 부서지는 법이 없지요.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위대한 사람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묵묵히 행군하는 나폴레옹의 병사인 것입니다. 이것이 ‘작은 인간'의 승리입니다.

“군대식의 규율과 인내가 나를 단단하고, 꿰뚫을 수 없는, 거의 내용이 없는 육체-덩어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그렇게 행군은 계속된다, 모스크바를 향해. 이제 나는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대략 이것이 나폴레옹의 지휘하에 있던 어느 병사의 삶이다.”

 

불안이 닿지 않는 낮은 곳

 

이 소설의 최대 의문은 야콥은 정말로 스스로 작아지길 원하는가, 그 선택은 강제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하인학교 입학도, 벤야멘타 원장과 함께 속박의 길을 떠난 것도 야콥 본인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얼마나 자발적이었을까요.

야콥이 간파한 것은 일시적 성공에는 영원한 불안이 따른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 상승하려면 누군가는 하락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야망에는 비용이 따릅니다. 경쟁사회는 모두의 야망을 부추기지만 실패의 비참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야콥은 언제 추격당할까 전전긍긍하는 승리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망이 없다면 실패도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될 수 없다면 아무 생각 없이 행군하는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곤란함이 있습니다. ‘작은 인간 되기’라는 야콥의 욕망은 성공, 자아실현, 사회적 상승이라는 근대의 이상 자체를 비틀어버립니다.

젊은 직장인 사이에 ‘조용한 퇴사’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기계적으로 출근해서 최소한의 근무만 유지하는 정신적 퇴사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늘어나는 비혼과 비출산은 자아의 확장을 원하지 않는 세태를 말해줍니다. 승진을 거부하고 작은 삶을 추구하며 경쟁 논리에서 일부러 비켜서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더 커져라' 명령하는 경쟁사회에 대한 불복종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번아웃 현상 역시 야망의 셧다운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이런 세태에 대해 쉽게 야망이 부족하다거나 성장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걱정합니다. 그러나 청년 세대의 야망 없음은 성공의 거부가 아니라, 실패의 거부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집, 결혼, 안정된 직장이라는 도달 불가능한 표준 목표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을 때, 욕망 자체를 끄는 것은 합리적 선택일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서 홍수 시대의 이면에는 거대한 하인학교가 있습니다. 야콥이 예감했던 것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니었을까요. 야콥은 높은 곳에서 내려가려 했고 오늘날 청년들은 처음부터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도착점은 같습니다. 불안이 닿지 않는 낮은 곳입니다.

 

작가 로베르트 발저. 위키미디어

작가 로베르트 발저. 위키미디어


큰사람이 되지 않는 법

 

생각해보면 장래희망이라는 것을 적어 학교에 제출하고 그것을 공유하고 지도받는 과정은 ‘더 큰 인간 되기’라는 근대적 욕망을 주입받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장래희망을 보고 선생님이 화낸 이유는 그러한 훈육의 목표와 어긋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큰 인간 되기라는 미션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야콥처럼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발저는 말년에 글쓰기를 완전히 멈추고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해 28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정말 정신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지인들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분명한 건 정신병원이야말로 야콥이 꿈꾸던 장소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곳, 생각이 죄가 되는 곳,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곳입니다. 그의 삶 자체가 작아지기의 극단적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포기하라는 것, 그래. 그것은 사랑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난 열 배로 사랑한다. 금지된 모든 것은 수백 배의 증폭된 방식으로 살아간다. 죽어야 하는 것은 보다 활기차게 살아가는 법이다.”

야콥이 금지를 사랑하는 이유는 금지로 인해 발견되는 삶의 의미 때문입니다. 하인의 삶은 가장 많이 금지된 삶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생생한 삶이지요. 발저는 야콥을 창조한 뒤 스스로 야콥처럼 살다 갔습니다. 세상의 요구로부터 완전히 격리될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이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을까요.

 

불멸이 된 ‘작은 인간’

 

너무 가난해서 종이를 살 수 없었던 발저는 광고전단과 달력 뒷면, 영수증, 포장지에 글을 썼습니다. 그 글씨들은 너무 작아 해독되지 못하다가 1980년대에야 출판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글씨 크기처럼 작은 인간으로 살다 간 발저가 자신이 불멸의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뻐할지, 자신이 그렇게 피해 다니던 ‘큰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정주식 팟캐스트 ‘발굴독서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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