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20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와 맞닿은 이집트 국경지대에서 인도주의적 구호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가자지구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기체나 액체 따위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관을 이어 배치하는 걸 배관이라 한다. 배관을 여닫는 건 밸브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최남단,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곳에 라파 검문소가 있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야 할 그곳을 열고 닫는 밸브는 이스라엘이다.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만.
2025년 12월3일 이스라엘 국방부에 딸린 팔레스타인 민사 담당 기구 ‘코가트’(COGAT)는 “휴전협정과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 라파 검문소를 조만간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코가트 당국자는 에이피(AP) 통신에 “가자지구를 떠나려는 모든 팔레스타인 주민은 이집트가 그들을 받아들인다고 합의하면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가자지구로 돌아오려는 사람들에겐 검문소를 개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갈 수는 있어도 되돌아올 수는 없는 일방통행이란 뜻이다. 10월8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가 합의한 휴전협정은 라파 검문소에서 가자 주민의 쌍방향 통행을 허용하도록 했다.
나갈 수 있어도 돌아올 수 없다는 건 무슨 말인가? 이집트를 통해 가자지구로 인도주의적 구호물자를 반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치료를 위해 긴급 이송이 필요한 가자지구 주민이 1만6천여 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들이 치료를 위해 라파 검문소를 통해 이집트로 건너가면, 퇴원 뒤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이다.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가자를 떠나야 하는 주민들도 한번 가면 다시 올 수 없다는 뜻이다. 강요된 이산, 강제된 추방이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789일째를 맞은 2025년 12월3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7만117명이 숨지고 17만99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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