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29일 미국 뉴욕에서 컬롬비아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정윤서씨의 법정 심리 기간에 연방법원 인근에서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윤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체포되었고, 미국을 떠나라는 요구를 받았다. REUTERS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뒤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너무 위축됐고, 이민자 탄압이 심해져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이승민(가명)씨가 2025년 6월11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그는 10여 년 전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마친 뒤 어렵게 직장을 잡았고, 영주권 발급 절차도 밟고 있지만 모든 게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체류 문제가 생기는 것보단 자발적으로 미국을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한다는 이씨는 “함께 연구하던 동료 두 명(남미·중동 출신)이 최근 비자 연장이 거부되면서 미국으로 오지 못했다”며 “미국행을 택한 건 무엇보다 자유로운 학문적인 분위기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 문화 때문이었는데 최근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지만 이미 미국 현지에서 비자가 만료돼 한국으로 귀국(사실상 강제 추방)한 사례가 적지 않으리란 목소리가 나온다. 2025년 4월, 텍사스 휴스턴의 한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전아무개 교수는 “수업을 마칠 수 없게 돼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긴급 공지를 올리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그의 공지글을 보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비자가 만료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짤막하게 이유를 밝혔다.
전 교수의 비자가 만료된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지 한국인 교수와 유학생, 연구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에 비판적인 학술논문을 발표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집회·시위 등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경우에 비자가 만료되는 등 체류 자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조심하는 분위기다. 캘리포니아주 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김영미(가명)씨는 “미국 학계에선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Diversity·Equity·Inclusion)이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고 많은 외국인 연구자가 이 주제를 공부하는데 트럼프 정부가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향후 몇 년 동안은 미국에서의 연구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유학생들은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집회에 참여하거나 게시글을 SNS에 올리면 안 된다고 주의하는 상황인데, 이미 방학을 맞아 한국에 갔다가 비자가 만료돼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했다.
체류 지위 위협은 비단 유학생에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린카드라 부르는 ‘영주권’이 있어도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 체포되고 미국 영토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7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주의 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에 진학해 영문학과 젠더학을 공부하던 정윤서(21)씨는 2025년 3월5일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진행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정씨가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인신보호청원서를 보면, 정씨는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시작된 뒤 학생 수백 명과 함께 이스라엘의 군사작전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해왔지만 공개 발언을 하거나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3월5일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학생들의 연좌시위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정씨는 그 집회에 나갔다가 뉴욕 경찰(NYPD)로부터 ‘공무집행 방해’ 혐의 출석 명령 티켓을 발부받았다.
통상적으로 학내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로부터 출석 명령 티켓을 발부받더라도 실제 재판으로 넘겨지거나 처벌받는 일은 많지 않다. 이번에는 달랐다. 3월8일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버지니아주에 있는 정씨 부모의 집을 방문했고, 3월10일에는 “정씨의 영주권이 취소됐다”고 통보했다. 3월13일에는 연방수사관이 정씨의 컬럼비아대학 기숙사를 압수수색했다.
정씨와 그의 변호인은 청원서를 통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청원할 권리를 보호한다)에 대한 부당한 침해이고, 현 정부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비시민권자에 대한 처벌 수단으로 구금이나 추방 위협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연방법원이 향후 재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민세관단속국이 정씨를 체포·구금·추방하지 못하게 명령을 내리면서 일단락됐으나, 정씨 사례는 현지 한국 교민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옥상의 한국인들을 다시 위대하게.”(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6월8일(현지시각)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로 현지 교민들의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로스앤젤레스(LA·이하 엘에이)에서 3월7일부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등록 이민자 단속에 반발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주니어가 1992년 ‘엘에이 폭동’ 사태 당시 ‘한인 자경단’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린 것이다. 사진에는 한국계 이민자가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장전하는 모습이 담겼는데, 이는 엘에이 폭동 때 폭도들의 표적이 돼 약탈과 방화 등의 피해를 입은 한인들이 스스로 총기로 무장하고 한인타운을 지켰던 일을 상징한다.
엘에이 한인회는 성명을 내어 “엘에이에서 아직까지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는데 트럼프 주니어가 33년 전 ‘루프톱 코리안’을 언급하며 소요 사태를 조롱하는 게시물을 엑스에 공유하는 경솔함을 보였다”며 “트럼프 주니어의 행동은 살얼음 같은 지금 시기에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인들의 트라우마를 어떤 목적으로든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반이민자 정책을 펼치지만, 이 정책이 전통적으로 이민자와 문화적 다양성에 기반한 미국 사회·경제의 기초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럼프는 미국이 이민자와 유학생을 수용하는 것이 대단한 호혜인 양 내세우지만, 유학생이 미국인보다 많은 등록금을 내고 이민자가 미국인보다 더 높은 생산성으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며 “미국의 난민 수용책이나 이민자 수용책의 미비로 사회적 갈등이 생기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데, 현재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갈등을 키워서 비용을 크게 만드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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