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저널리즘 가치는 바뀔 수 없다”

2026년 8월12일 박창규 제이티비시(JTBC) 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준용 기자
2026년 6월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제이티비시(JTBC) 사옥 앞에 채권자들이 모였다. 제이티비시가 206억원 규모의 유동화 차입금을 갚지 못하고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직후였다. 400여 명의 개인이 투자했던 760억여원의 채권이 원금 손실 위기를 맞았다. 중앙그룹 등이 손실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채권을 판매했다는 ‘불완전 판매’ 의혹도 제기됐다. 집회에 나온 채권자 30여 명은 노후자금과 교육비, 전세자금 등을 투자했다며 원금 보장을 요구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투자한 사람, 결혼과 집 마련 자금을 투자한 30대, 84살 어머니의 노후자금을 투자한 사람도 있었다.(제1622호 참조)
박창규(48) 제이티비시 노동조합 위원장(탐사부장 겸직)은 출퇴근길에 이 채권자들을 마주쳤다. 그러면서 ‘제이티비시는 대형 언론사니까 괜찮겠지’라고 여기며 노후자금까지 투자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붙잡고 사과라도 하고 싶었는데,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게 더 미안했어요.”
제이티비시 사태로 사내 구성원들도 위기를 맞았다. 노동자 대부분은 회사의 재정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을 외부 보도로 알게 됐다. 한때 법인카드가 막히고 외주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돈도 일부 지연됐다. 위기가 터진 지 두 달이 지난 8월11일 밤, 13년 동안 하나였던 중앙일보·제이티비시 통합노조가 법인별 노조로 분리됐다. 제이티비시는 법원에 자율구조조정지원(ARS)을 신청하고, 중앙일보는 워크아웃 개시 선언을 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이 분리 투표 직후 치른 선거에서 제이티비시 단독 노조의 첫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박 위원장은 “우리가 해왔던 일의 가치를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오너의 도덕적 해이와 선을 그어야 했다”며 노조 대표자가 된 이유를 말했다. 그는 2006년 언론계에 입문해 2015년 제이티비시에 입사한 뒤 사회부 등에서 일해온 기자다. 한겨레21은 8월1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박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13년 동안 함께했던 중앙일보와 제이티비시 노조가 분리됐다.
“제이티비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이해를 온전히 대변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니까 분리가 필요했다. (…) 한 달 정도 대의원들을 만나고 보도국과 편집국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거듭 묻는 과정을 거쳤다.”(제이티비시·중앙일보 재적 노조 조합원 319명 중 287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276명이 법인별 노조 분리에 찬성했다.)
―6월 위기 때부터 회사 상황이 구성원에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조금씩 나아지지만, 여전히 충분하지는 않다. 오너와 그룹사가 큰 틀에서 모든 걸 결정하고, 회사 경영진조차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정 부분 배제됐던 것으로 보인다. (…) 또한 중앙일보·제이티비시 통합노조 형태에서는 우리가 제이티비시만의 정보를 능동적으로 요구할 수 없었다. 중앙일보도 상황이 있고, 우리(제이티비시)도 우리 상황이 있는데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나. 이제는 단독 노조가 그렇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우리 운명을 ‘지라시’로 알게 하거나 외부를 통해 알게 하는 일은 없을 거다.”

2026년 6월19일 중앙그룹 채권 개인 투자자들이 서울 마포구 제이티비시 사옥 앞에서 중앙그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6월15일 제이티비시를 비롯한 중앙그룹 5곳은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중앙홀딩스·콘텐트리중앙·메가박스중앙·중앙피앤아이 4곳은 실제 회생절차가 개시됐다. 다만 법원은 제이티비시에 대해서는 당장 회생절차를 개시하지 않고 채권자와 자율적으로 채무조정을 협의하는 자율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회생 신청은 유지하되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미뤄두고 자율협상 기회를 준 것이다. 법원은 제이티비시의 회생절차 개시 여부에 대한 판단을 8월30일까지 미룬 상태다. 반면 중앙일보는 워크아웃에 들어가 금융채권단 주도로 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다.
―조합원들이 무엇을 가장 불안해하고 있나.
“우리가 생활인이니까 고용과 임금이 절박하지만, 제일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제이티비시의 신뢰, 우리가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고 우리가 해온 일의 가치가 부정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때도 후배들이 돌아가며 전남 목포에서 살았다. 기사가 나오지 않더라도 유족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순실 태블릿피시(PC) 보도나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 보도도 있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그래도 사회에 의미가 있다는 효용감을 느꼈다. 기자나 피디들이 월급 받고 살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들이 제이티비시 뉴스와 콘텐츠를 믿어줬기 때문이다. 그 신뢰를 잃어버리면 언론사로서의 토대가 사라진다.”
―회사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임금이나 복지 등이 축소될 수도 있다.
“필요한 변화에는 책임 있게 참여하겠다. 다만 (오너와 그룹사가 한) 과거의 잘못된 의사결정에서 생긴 비용을 직원들에게 먼저 청구하는 방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필요하다면 경영진과 최대한 협력하면서 같이 갈 것이고 견제할 부분은 분명히 할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이티비시의 유동성 위기로 회사채를 산 개인 투자자들은 채무불이행과 회생 신청으로 원금 회수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한겨레21이 2026년 7월 제이티비시 채권을 보유한 개인 투자자 2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채권 투자를 한 이유로 ‘제이티비시가 대형 언론사라서 신뢰했다’(51.5%)고 답한 비중이 가장 컸다.
―제이티비시 이름과 신뢰를 보고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다.
“제가 죄송하다고 해서 받아들여질 것도 아니지만, 죄송한 마음이다. 그분들이 제이티비시가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투자했을 것이고, 그룹은 이 신뢰를 이용해서 자금을 조달했다. 우리가 쌓아온 신뢰가 그룹이 자금을 조달하는 신용의 일부가 된 거다. 다만 책임에 위계가 있다면 가장 큰 책임은 사주가 져야 한다고 본다. 경영진은 그 구조 속에서 제이티비시 법인의 이익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고 외부의 피해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법인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피해를 어떻게 최대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구조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구성원)도 반성해야 한다.”
중앙그룹 위기의 배경에는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 간 자금 거래가 있었다. 중앙일보와 제이티비시가 번 돈이 중앙홀딩스를 거쳐 다른 계열사로 흘러가고, 부실 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을 계열사끼리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난을 버텨왔다. 자본잠식 상태였던 제이티비시는 중앙홀딩스의 지급보증을 바탕으로 회사채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중앙그룹이 에스엘엘(SLL)중앙의 상장을 추진하던 2022년, 제이티비시는 ‘아는 형님’ 등 주요 프로그램 279개의 지식재산권(IP)을 433억원에 에스엘엘중앙에 넘겼다. 아울러 제이티비시는 올림픽·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중앙그룹 계열사와 얽힌 제이티비시의 자금 구조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2025년 기준으로 매출의 45%, 절반 가까이가 다른 그룹사로 나가는 구조다. 에스엘엘중앙뿐 아니라 중앙홀딩스 등으로 자문료나 임차료, 각종 이자 비용 등 많은 돈이 나가고 있다. (…) 그동안 그룹 전체의 판단에 따라 개별 법인들이 도구처럼 사용됐던 것 같다.”(제이티비시 2025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제이티비시가 관계사와 거래하며 쓴 금액에서 벌어들인 금액을 뺀 차액은 약 1422억원이었다. 2025년 제이티비시 개별 매출 3338억원의 약 43%다.)
―제이티비시 스스로 정상화할 수 있다고 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언론사로서 가진 능력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아직 남아 있다. 그룹사로 나가는 많은 돈이 그만 나가게 해야 하고, 우리의 방만함이 있었다면 그것도 당연히 줄여나가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이 회사가 정상화가 안 될 회사인가’라고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회생 신청 이후 비정규직과 외주 제작사 노동자의 임금 지급이 지연됐을 때 박 위원장은 아찔했다고 한다. 현재 비정규직, 외주 제작 노동자는 대부분 방송사 노조원이 아니다. 현재 제이티비시 직원은 500여 명이고 노조 조합원은 약 120명으로, 취재 기자가 대부분이다.
―비정규직과 외주 제작 노동자들과도 연대할 것인가.
“아직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지만, 연대할 생각이다. 계약 조건이 다를 뿐 같이 일하는 동료다. 큰 틀에서는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이티비시 노조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어떤 회사로 남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제이티비시의 가장 큰 자산은 건물이나 장비, 자본이 아니라 신뢰와 콘텐츠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신뢰에 큰 금이 갔다. 오너는 바뀔 수 있지만 제이티비시가 지키려 했던 저널리즘의 가치는 바뀌면 안 된다. ‘오너의 도덕적 해이와 우리는 분리될 수 있고, 우리가 오너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용기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구성원들에게 주는 것부터 해나가려고 한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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