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푸른 것은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지표 면적의 3분의 2가 바다다. <무법의 바다>(박희원 옮김, 아고라 펴냄)는 40개월여 동안 비행기 85대로 5대양 6대주 40여 곳을 돌며 기록한 ‘우리 별 지구’의 바다에 대한 헌사라 할 만하다.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17년여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일한 저자 이언 어비나는 하늘길 40만4천여㎞, 바닷길 1만2천해리(1해리=1852m)의 대장정을 통해 “서글프리만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바다와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혼란과 고통”을 마주했다. 그가 2019년 취재 내용을 묶어 책을 펴낸 직후 회사를 그만두고 ‘무법의 바다 프로젝트’란 바다 전문 탐사보도 단체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어비나에게 바다는 이중적이다. “바다는 무한의 은유이자 정부의 간섭과 확실하게 분리되어 가장 순수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자 “악의적 행위자에게 바다는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광활한 무법지대”이기도 하다. 한국어판(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과 달리 영어판 부제가 ‘마지막까지 길들여지지 않은 변경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달린 것도 바다에 대한 저자의 양가감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5꼭지로 이뤄진 <무법의 바다>는 인터폴의 ‘자색 수배 대상’인 최악의 밀렵선 추적부터 한국 국적 저인망 원양어선 오양70의 인권유린 실태, 임신중지가 불법인 육지에서 여성들을 배에 태워 공해로 나가 임신중지 시술을 해주는 의사와 무한 폭력과 굶주림 속에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해상 노예의 삶을 추적한다. 밀항과 해적, 석유시추권을 따내려는 에너지 기업에 맞서 ‘인류의 전사’로 나선 과학자와 환경단체의 활약상 등도 엿볼 수 있다.
“과거에는 바다의 광대함에 만물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무한한 능력이 수반된다고 믿었다. (…) 이 광활함은 오랜 시간 우리에게 사실상 모든 것을 바다에 내버려도 된다는 허가증이 되어주었다.”
특히 호화 크루즈선의 폐기물 불법 투기 사건을 파헤친 11장(쓰레기를 흘려보내다)은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방류를 떠올리게 한다. 해사 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기관사가 첫 직장(미국 국적 크루즈선 캐리비언프린세스)에서 처리 비용과 항만 적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배에서 사용한 기름과 여타 독성 폐기물을 바다로 불법 방류하는 ‘마법의 관’을 발견한 뒤 내뱉은 “이거 개수작이잖아요”란 말은 울림이 크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
김재연 지음, 세종서적 펴냄, 2만2천원
‘시빅 데이터’란 시민을 위한 데이터를 말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이티 강국이고, 지문을 포함한 국민의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한다. 이런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정부 서비스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정부와 공무원 관점으로 설계한 서비스를 비판하면서, 많은 데이터가 아닌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 잘 활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단초를 제공한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 창비 펴냄, 1만8천원
의사인 저자는 딸이 자해해왔고 양극성장애를 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을 입원시키고 약물치료를 시도하면서 의사는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의료’의 세계를 공부해나간다. 7년간 직접 몸과 머리를 부딪치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정신질환의 통념을 검증해나간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
정혜실 지음, 메멘토 펴냄, 1만3천원
혼혈, 코시안, 온누리, 다문화…. 국제결혼 커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규정하는 말이다. 부르는 말은 변해왔지만 이들을 피부색, 출신국으로 나눠 차별하는 한국의 태도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남편이 파키스탄인인 저자가 20여 년간 만나온 이주민, 난민을 기록했다.
루나의 전세역전
홍인혜 글·그림, 세미콜론 펴냄, 1만8천원
꼼꼼하고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루나가 전세사기에 당했다. ‘묵인적 갱신’ 이후 1년, 집주인이 ‘가스가 샌다’ ‘노후 건물’ 운운하며 이사를 종용한다. 불안한 마음에 다른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준비한다. 이사일 확정 뒤 ‘헌 집’의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더 큰 일은 이사한 새집에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부동산이 경매 예정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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