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31일 아랍에미리트연합 수도 아부다비에서 (왼쪽부터) 메이르 벤샤바트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재러드 쿠슈너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 안와르 가르가시 아랍에미리트 외교담당 국무장관이 회담하고 있다.
2020년 9월15일은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진 중동 현대사에서 또 하나의 주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걸프 왕정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바레인이 중동의 숙적 이스라엘과 전격적인 관계 정상화 협정을 맺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명명된 이 역사적 사건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중재했지만, 무엇보다 당사국들의 이해와 손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아브라함 협정은 당장 주변 중동 국가들의 외교안보 정책을 시험대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 중동 정세의 지각변동까지 예고한다. 아브라함 협정의 배경과 의미, 전망을 협정 당사국과 주변 아랍 국가들, 그리고 이란까지 서로 다른 시선으로 분석해본다._편집자주
2020년 11월3일 미국 대선을 둘러싼 국제적 관심이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가시밭길을 걸어온 이란만큼이나 미국 대선에 더 몰입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란 지도층은 미국이 대이란 적대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누가 대통령이 돼도 현재와 차이가 없으리라고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대다수 이란 국민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제재가 완화될 거라는 희망을 숨기지 않는다.
정치적 색채에 따라 논조가 다르지만, 이란 언론은 미국 대선 소식을 매일 자세히 보도하면서 분석과 함께 희망 내지 절망 어린 관측을 내놓는다. 이란의 언론 주목도만 놓고 보자면, 미국 대선에 비해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맺은 ‘아브라함 협정’은 뒷전에 밀려 있다. 마치 이란이 맞상대로 여기는 미국과 달리 미국에 기대는 ‘조무래기들’의 움직임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대미 관계를 둘러싼 이란 정치권의 논쟁
미국을 대하는 이란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면서 시아파의 두 번째 이맘(종교지도자)인 하산을 둘러싼 역사적 해석 논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이며 시아파 첫 번째 이맘으로 존경받는 알리는 656년 이슬람 공동체의 네 번째 정통 칼리파(정치·종교 권력을 아울러 갖는 이슬람 교단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전임자 우스만의 살해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다. 우스만 집안 출신인 군벌세력 무아위야는 알리에게 반기를 들었다. 무력 대립이 이어지던 중 661년 알리는 한때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인 하리지파에 암살당했다.
아버지 알리를 이어 지도자가 된 하산은 무아위야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2020년 10월14일 국무회의에서 이맘 하산이 대다수 의견에 따라 평화를 선택했다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맘 하산은 전시에는 전사, 평화시에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평화시에 전사가 되거나 전시에 평화를 구하는 것은 둘 다 잘못이다. 적절한 때에 나가 싸우고 적절한 때에 평화를 구해야 한다.”
2013년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서방과의 핵협상에 나선 이란 정부에 “영웅적인 유연성”을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그의 저서 <이맘 하산의 평화>의 부제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영웅적인 유연성’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20년 5월 트위터에서 하메네이가 이슬람의 미래를 위해 평화를 선택하며 자신을 희생한 이맘 하산을 가장 용감한 인물로 치켜세웠을 때, 이란과 미국의 양국 협상에 진전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추측이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이맘 하산의 평화가 단순히 역사의 한 장면에 그치지 않고 이란 최고지도부가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냐는 해석이 이어지는 건 오랜 관행이다. 따라서 로하니 대통령의 반대파가 로하니 대통령이 이맘 하산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과 모종의 음모를 꾸미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그를 비판한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핵협상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이란의 보수언론 <카이한>의 편집장 호세인 샤리아트마다리는 “핵협상을 한 게 완전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맘 하산이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내부의 배신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화를 선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로하니가 애써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란 의회 내 강경파 수장인 모즈타바 졸누리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위원장은 “다수의 희망 때문에 이맘 하산이 평화를 선택했다”고 주장하면서 “적과의 협상을 정당화하는 로하니 대통령에게 현재 이란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탄핵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고지도자가 그를 하루 천 번 처형하라고 명해도 시원찮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랍에미리트연합·바레인과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을 미국이 중재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2020년 9월1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거센 항의시위를 벌인 거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의 사진이 불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시아 이슬람’ ‘반미’ 내세운 이란의 영향력
661년 이맘 하산의 평화를 두고 무려 천 년을 훌쩍 넘긴 2020년 이란의 지도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현실은 ‘이슬람 공화정’이라는 이슬람 역사상 전대미문의 거대한 정치실험 현장인 이란이 ‘현대판 무아위야’인 미국, 친미 아랍 왕정국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압박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은 경제적으로 이란을 완전히 봉쇄했다.
핵협상 타결 전 경제제재 당시 1달러에 3만~4만리알이던 환율은 이미 30만리알을 넘었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이란이 받지 못한 돈만 한국에서 80억달러(약 9조원)를 비롯해 5개국에서 385억달러(약 43조6천억원)에 이른다. 이란과의 교역도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이란이 믿는 나라 중 하나인 중국마저 미국의 압력 때문에 이란에 줘야 할 200억달러(약 22조8400억원)를 송금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도록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의약품이나 인도적 구호 물품을 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은 ‘시아 이슬람’과 ‘반미’를 지렛대 삼아 역내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2003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뒤 중동에는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지중해로 이어지는 ‘시아 초승달’ 지역, 또는 ‘이란의 육교’가 형성됐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시아파 이라크가 이란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면, 이 관계가 시리아와 헤즈볼라(레바논)와 이어져 걸프 국가와 전세계의 안정을 해치는 새로운 초승달을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 대로다. 설상가상으로 예멘에서 친이란 후티 반군이 발흥해 홍해까지 이란의 영향력이 미치면서, 걸프 지역 아랍 왕정국과 이스라엘에선 이란에 대한 경계심을 넘어 공포감이 극도로 고조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이유다.
2017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이란을 이렇게 비난했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현재까지 이란 정권은 전세계 테러를 이끌었다. 1979년 혁명이 시작되기 전 300년간 우리나라는 테러나 극단주의를 모르고 살았다. 이란은 선량한 이웃을 모두 거부했다.” 그의 발언은 자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 그해 사우디아라비아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중동의 히틀러”라고 불렀다. 그는 “불의로 가득 찬 세상의 종말에 정의를 세우러 온다는 이맘 마흐디를 기다리며 (시아파의 종말 신앙) 무슬림 세계를 통제하려는 이란”과 상호 이해관계를 두고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중동 지역뿐 아니라 전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이란의 1979년 체제를 종식하겠다”는 빈 살만의 의지는 다음의 말에서 볼 수 있듯 굳건하다.
“지난 30여 년간 일어난 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 30여 년간 이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중동의 모습이 아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이란 모델을 베끼려고 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전세계로 문제가 퍼졌다. 이제 이를 없앨 때다.”
“이란 정권의 주목표가 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슬림의 예배 방향(메카)에 도달하는 것이 이란 정권의 주목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라 저기 이란에서 전투가 벌어지도록 애쓸 것이다.”
이란 체제 무너뜨리려는 이웃 아랍국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도, 바로 1979년 이슬람과 반미를 앞세운 이란혁명 체제를 무너뜨리기 전에는 중동과 세계에 평화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은 그 노력이 집중된 전장으로, 이란의 레바논 진출로를 막아, 반미와 반이스라엘을 내세워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의 손길을 끊으려 한다. 더 나아가 이라크에서마저 이란의 영향력을 소멸시켜, 이란이 아예 주변 아랍 세계로 나오지 못하도록 고립시키는 것이 주목표다. 이렇게 되면 ‘시아 초승달’ 내지 ‘이란의 육교’는 완전히 궤멸한다. 1982년 이라크와 전쟁할 때 이란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는 “예루살렘은 카르발라를 통해서, 레바논은 이라크를 통해서”라고 했는데, 이제 이웃 아랍 왕정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통로를 철저히 틀어막을 뿐 아니라 아예 이란의 현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미국과 친미 아랍 왕정국, 이스라엘의 압박에 맞서 이란은 유라시아에서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며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다. 어느 정도 성공은 거뒀지만, 양국 교역량이 이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다만 러시아가 든든한 우군으로 버티는 것이 이란에 위안이 된다. 물론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이란군 공습을 러시아가 묵인하는 데서 볼 수 있듯, 양국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 국가들 역시 이란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 지금이야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제재가 풀리면 이란은 다시 서방국가와 경제관계를 재건하는 데 몰입할 것이라고 여긴다. 더욱이 이란의 유라시아 행보마저 막으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종교와 경제를 매개로 계속 접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는데, 이란령 북부 아제르바이잔주 거주민이 북쪽 동족국가 아제르바이잔과 통일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미국 역시 아제르바이잔에 2019년 1억달러 이상 군사원조를 해서 이란의 심기를 건드렸다.
미 대선 결과에 따른 이란의 선택은?
이란의 영향력을 원천 봉쇄하려는 적극적인 반이란 국가들의 움직임이 2017년 이래 강력하게 형성된 상황에서 11월 미국 대선이 열린다.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더라도 이란이 ‘이맘 하산의 영웅적인 유연성’을 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선택할 경우 이란 대다수 국민의 바람일까, 아니면 ‘배신자들의 모략’에 바탕을 둔 것일까? 10세기 무슬림 역사가 무함마드 이븐 타바리의 표현처럼, 이는 ‘오로지 알라만이 아실 것’이다. 알라후 아을람!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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