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1971년 화창한 어느 가을날, 나는 자유연합당이라는 집단의 모임에 참석해 방을 가득 메운 낯선 사람들 틈에 앉아 있었다. 곧 그날 모임의 목적이 미국 연방 상하원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지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규모가 작은 자유연합당에서 딱히 너도나도 이 두 의석에 출마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무엇이 옳고 정의로운지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교육, 경제, 베트남전쟁에 대한 내 의견을 밝혔다. 나는 상원에 출마할 자유연합당 후보지명을 따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말하는 민주사회주의(버니 샌더스·원더박스·2015)이 소개하는 버니 샌더스 정치인생의 시작이다. 미국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버몬트주로 이주한 샌더스는 이날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석했다. 학생운동 경험이 있었지만, 자유연합당의 당원도 아니었다.
민주당·공화당의 양당제를 넘어서려는 버몬트 지역 정당인 자유연합당의 후보로 1972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2.2% 득표로 낙선했다. 이후 그는 지치지도 않고 정치역정을 걸어 벌링턴 시장 4선, 연방 하원의원 8선, 연방 상원의원 2선을 지냈다. 그리고 지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버니 샌더스는 지난 2월9일 민주당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60%를 득표해 38%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에 앞섰다. 이렇게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는 언론이 ‘민주사회주의자’로 요약하는 버니 샌더스를 소개하는 책이 두 권 번역돼 있다. ‘버니 샌더스 공식 정치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과 함께 8시간37분의 장시간 의회 연설을 기록한 (버니 샌더스·북로그컴퍼니·2015)이 있다. 샌더스가 직접 쓴 책들이다.
각각 413쪽, 325쪽에 이르는 내용이 그다지 새롭진 않다. ‘어차피 결론은 불평등’으로 요약될 얘기다. 샌더스 자신도 모르지 않는다. “버몬트의 정적들은 나더러 똑같은 얘기만 주구장창 해대서 따분하다고 비난한다. 그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반면 극소수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현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의는 그리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통탄스럽게도 대부분의 정치인이 이 나라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사안들이나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라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71년에 “손을 번쩍 들고… 내 의견을 밝혔”듯이 40여 년을 ‘주구장창’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대해 지치지 않고 말해왔다. 일찌감치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샌더스는 “바보야, 문제는 열정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의 끈질긴 메시지는 정치인이 은폐하고, 부자들이 조작하고, 미디어가 왜곡해 불평등의 기원과 현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가닿아 ‘뉴스’가 됐다. “버몬트 주민 대부분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을 견해를 알릴 기회를 얻은 것이 무엇보다 나를 신바람 나게 했다”는 첫 선거운동의 감흥은 1972년에서 44년이 지난 지금의 대선 캠페인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뜻하는 ‘애버리지 조’의 대변인 샌더스는 말한다.
“민주사회주의란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는 이름만큼 위험한 것이 아니다. ‘애버리지 조’가 살 만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미국이 그랬고, 지금의 북유럽이 그렇다고 주장한다. 평생 비슷한 얘기를 여전히, 저토록 열정을 다해서 한 연설은 최근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미국 사회에서는 상위 0.1%가, 1%가 아닙니다, 0.1%입니다. 0.1%가 하위 90%가 소유한 부와 맞먹는 수준의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도덕적인지, 정의로운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가 최근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인 리버티대학(Liberty University)에서 했던 연설은 소셜미디어네트워크를 타고 퍼졌다. 기독교 교육을 받아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뚱한’ 얼굴의 학생들 앞에서 그는 ‘도덕’을 매개체 삼아 과연 이런 극심한 불평등이 ‘도덕적’이냐고 거듭해 묻었다.
연설은 1%와 99%의 대비에서 시작해 그가 “극부층”이라고 말하는 0.1%의 탐욕에 대한 고발로 끝난다. 그는 끝없이 같은 얘기를 하지만, 숫자를 가지고 말한다. 시장, 의원을 지내며 얻은 정보에 바탕하고, 기사와 통계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인용한다. 간명한 숫자를 간략한 대비를 통해 보여줘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주장은 에 부록으로 실린 ‘17가지 대선 공약’에 집약돼 있다. 첫 공약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 해소’다. 그는 극심한 불평등을 만든 원흉으로 월가를 집요하게 지목해왔다. “(2008년) 월가 붕괴 이후, 모든 소득 증가분의 58%가 상위 1%에게 가버렸다.” 그래서 그는 미국을 “과두제”라고 부른다. 지난 2월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샌더스는 연설에서 “오늘 밤과 내일 뉴욕에 머물지만 월가의 펀드매니저를 만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월가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힐러리 클린턴과 다르단 것이다. 샌더스는 과두제에 속박당하지 않기 위해 대기업의 고액 기부인 슈퍼팩(Super PAC)을 받지 않는다.
공약은 ‘월가 개혁’으로 이어진다. “대마불사는 틀렸다. 대마필사이다.” 공약에서 가장 급진적인 부분이다. 14번째 공약은 미국 6대 금융기관의 독점을 요약한 다음 “이런 금융기관들이 미국 납세자들로부터 7천억달러의 긴급구제금을, 연방준비제도로부터 16조달러 이상의 사실상 무이자 대출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대형 은행을 해체하기 위한 ‘대마불사, 대마필사법’(Too Big to Fail, Too Big to Exist Act)을 제안”한다. 그렇게 거둬들인 돈은 어디에 쓰느냐. “월스트리트 투기를 감소시키는 금융거래세를 신설하여 이 돈을 대학 무상교육에 사용할 것이다.”
결국 그의 말이 가닿는 곳은 의료, 교육, 아동, 청년이다.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그는 “처방약 가격 인하”를 주장한다. 13번째 공약은 “지난해 19세에서 64세 사이의 미국인 중 3500만 명이 돈이 없어 처방약을 살 수 없었다. 이는 5명 중의 거의 1명꼴이다”라고 지적한다. 원인은? “지나치게 높은 약값 때문이다.” 이어 군산복합체, 투기자본과 더불어 공공재인 지적재산권을 특허로 사유화해 폭리를 취하는 거대 제약회사와 전쟁을 선포하는 정책이 제시된다.
“주당 40시간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최저임금 인상 공약으로 구체화된다.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각별히 강조한다. 공약은 “50% 이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년들과 3분의 1 이상의 백인·히스패닉계 청년들이 전일제 일자리를 찾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향후 5년간 기반시설에 1조 달러를 투자하는 법안을 도입하여… 1300만 개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다. 샌더스의 저서에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철도, 도로, 다리 등 기반시설의 낙후성을 지적하며 이를 보수하고 건설하는 작업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뉴딜식 해법이다.
그의 연설엔 사람이 있다어쩌면 구좌파 냄새도 풍기는, 완전히 새롭지 않은 주장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이유는 뭘까. 버니 샌더스가 증명한 현실이 있어서다. 그는 공화당의 텃밭이었던 버몬트주에서 무소속 사회주의자 시장을 지냈다. 결국 벌링턴시를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일 뿐 아니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
그 힘은 가가호호 방문하는 발품에서 나왔다. 그는 에서 “하원에서 일한 6년 동안 워싱턴에서 주말을 보낸 적은 두 번밖에 없다”고 돌이켰다. 그는 거액을 들여 정치 컨설턴트에게 선거 전략을 의탁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꿈을 꿨다. “우리 진영에서 정치를 잘 아는 사람 천 명이 버몬트 전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게 한다. …천 명이 각자 200가구를 직접 방문하면 버몬트주 전체 가구를 방문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났다.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이 부시 행정부 시절에 시작된 감세 조치의 핵심 조항을 2년 연장하는 법안에 합의하자 그는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8시간37분의 ‘샌더스 필리버스터링’을 했다. 2010년 12월10일 당시 68살의 버니 샌더스가 한 연설에 ‘애버리지 조’들은 열광했다. 그는 말했다. “지난 사흘 동안 제 사무실에 걸려온 전화와 이메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약 5천 통이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5천 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설에서 숱한 사연도 전했다. “남편과 저는 버몬트주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겐 아이가 둘이 있습니다. …우리는 집과 땅이 있는 걸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료비가 올라 아기의 분유와 기저귀, 그리고 연료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샌더스는 덧붙였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일하며,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010년의 미국입니다.”
에 에필로그를 쓴 저널리스트 존 니콜스는 버몬트주에서 만난 84살 한 여인의 반응을 전한다. “1794년부터 가족 대대로 농장을 운영해왔다는 에셀 여사는 샌더스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음과 같이 외쳤다. ‘좋아하냐니? 사랑하지! 처방전 약품값이 근심스러워. 이놈의 약값이 미쳤다고.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와중에 우리 편이라고는 버니뿐이야.’” 사회 의제에 진보적인 샌더스의 입장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한 ‘버니는 우리 편’이라고 여기는 주민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상원의원 선거에서 7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샌더스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완성은 진정한 1인1표다. “내가 말하는 정치혁명이란 그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정치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매체의 본질을 바꿔서 수많은 사람이 느끼는 애로사항과 고통을 다루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의 80퍼센트에서 90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한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호소한다. 그것은 실제 벌링턴, 버몬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제 그는 말한다. “우리는 벌링턴이라는 도시에서 이겼습니다. 우리는 버몬트주에서도 이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기려 합니다.”() 그가 승리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도 투표율이 올랐다.
‘설마’를 ‘혹시나’로여전히 남은 의문은 있다. 평생 양당제를 거부해온 그가 왜 민주당 후보가 됐는지, 그가 선택한 미국식 야권연대가 옳은지 등이다. 무엇보다 ‘어차피 후보는 힐러리’라는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당선되더라도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그랬듯, 체제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은 꿈이 깎이고 깎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75살 샌더스는 ‘설마 될까’를 ‘혹시나 모르지’로 바꾸어놓았다. 지금은 활활 타오르는 버니를 느낄(Feel The Bern) 시간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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