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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혜’가 ‘먼 근혜’ 되기까지

게이트 계기로 박근혜 시대 다시 쓰는 책 3권
등록 2017-01-11 23:03 수정 2020-05-03 04:28

이전에 가 있었다. 박근혜씨가 좋아했다는 드라마 이야기다. 2000년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 여성지 프리랜서 작가일 때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에게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를 묻자 중국 대하 드라마를 꼽았다고 한다(, 독서광 펴냄, 2016).

배우 현빈도 없는 측천무후 시리즈의 ‘어떤 점이 그렇게 인상 깊었나’라는 후속 질문에 박근혜씨의 답은? “음, 그러니까, 그… 저… 권력을 잡기까지 과정이 아주 재밌었어요.”

의 ‘길라임’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재벌 애인을 만나는 캔디형 여주인공이라면, 측천무후 시리즈는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인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다. 한국의 장희빈처럼 중국에서 수차례 드라마로 다뤘다.

시리즈는 측천무후가 자식까지 죽이며 정적을 제거하고 왕좌에 오르는 권력투쟁에 중점을 둔다. 전여옥 전 의원은 정확히 어떤 시리즈인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초선 국회의원 박근혜씨의 재미 포인트가 “권모술수와 음모, 그리고 궁중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 그리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였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근혜씨에 대한 사적·집단적 기억을 다시 쓰는 출판물이 나오고 있다.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나. 아무리 그래도 1998년부터 정치를 해왔고, 국민 1577만3128명이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인데!’ 불쑥불쑥 울화(!)가 치미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장기전’의 연료이자 ‘게이트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라도 기억의 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5년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대표일 때 대변인을 맡아 박씨를 보좌한 전여옥 전 의원은 에서 ‘여의도 기억’을 풀어썼다. 물론 그는 2007년 4월 “박근혜 대표 주변 사람들은 무슨 종교집단 같다”며 박씨와 결별을 선언한 뒤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2012년 1월에 출간한 자서전 [i 전여옥](현문미디어 펴냄)에서 박씨의 ‘베이비 토크’, 비민주적 관행 등을 서술했다. 일부 겹치는 내용이 있지만 이번에는 아예 박씨를 주어로 게이트에 맞춰 썼다. 대통령 임기 동안 언론과 여의도 지인 등을 통해 박씨를 관찰한 내용 등 후일담도 더했다.

이미지 정치 시대 ‘허수아비 대통령’을 만들려 한 건 최태민·최순실 일가만이 아니었다. 권력 엘리트 그룹이 존재했다. 유세 현장에서 박근혜씨와 환호하는 군중을 지켜보던 다선의 ‘K 의원’은 전여옥 전 의원에게 “박근혜가 안전하다”고 표현했다. 누구의 안전일까.

“박근혜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권력 의지가 아주 강하지. 허주(‘킹메이커’로 불렸던 고 김윤환 전 의원)가 그랬어요. 권력은 박근혜한테 맞춤옷 같은 거라구요. 대통령은 시스템에 얹히면 굴러가게 돼 있어요.” K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박근혜는 ‘특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특권만 누리고 의무는 저버린’ 한국 권력 엘리트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극단’을 치닫긴 했지만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가 지극히 예외적인 인물이라면, 박근혜 게이트는 원초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 권력 엘리트는 먹이사슬 관계로 엮여져 있어 그 어떤 견제와 균형의 힘도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물과사상사 펴냄, 2016). 강준만은 박근혜씨를 열쇳말 ‘권력·과거 중독’ ‘의전 자본’으로 재구성한다.

“박근혜와 가까웠던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지금은 박근혜와 대부분 먼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 이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친근혜’에서 ‘먼 근혜’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박근혜의 가장 민감한 부분, ‘빈약한 콘텐츠’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보수 성향 언론 ‘조·중·동’ 역시 박근혜와 가까웠던 그룹이다. 그러나 이들은 ‘빈약한 콘텐츠’를 넘어서 희대의 게이트를 폭로하는 보도를 이끌었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2011년 박은주 기자가 'TV조선' 개국 당일 방송에서 박근혜씨와 인터뷰할 때 등장한 자막)는 왜 꺼져갔나.

정철운 기자의 책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6)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정 기자는 ‘조중동에게 박근혜는 노무현보다 나빴다’라고 이름 붙인 장에서 “‘배반’과 ‘이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며 박근혜 시대 조·중·동 수난사를 복기한다. 그가 꼽은 배경은 박근혜 정부의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소송과 일방 통보 △경영상 타격을 준 김영란법 △‘갑질’을 금지하는 또 다른 족쇄 대리점법 △광고총량제·중간광고·인사까지 노골적인 ‘방송’ 편애 등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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