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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애도’의 인문학·사회과학적 사유를 돕는 책 6
등록 2016-10-12 20:07 수정 2020-05-03 04:28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런데 그의 몸을 땅에 편히 묻어줄 수 없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짐승에게 먹히도록 들판에 내버려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반역자’라는 이유였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가 처한 상황이다.(, 소포클레스 지음, 기원전 441년) 안티고네는 국법을 어겨서라도 죽은 오빠의 몸을 수습하려 애쓴다. ‘인간의 법’을 넘어서는 ‘윤리’가 있다고 믿어서다.

죽은 자의 몸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못한 채 공권력과의 싸움터가 된 상황. 문학평론가 왕은철은 안티고네의 비극에서 애도의 본질을 “몸에 의한, 몸을 위한, 몸의 애도”라고 읽는다. “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애도의 출발점”인데, 그러한 “‘정상적인 애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슬픔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현대문학 펴냄, 2012) 고 백남기 농민의 주검을 둘러싼 부검 논란, ‘온전한’ 세월호 선체 인양 논란이 피해자 가족들을 ‘투사’로 만드는 상황과 겹친다. 이들의 애도는 공권력에 의해 방해받고, 계속해서 유예된다.

애도의 ‘성공’과 ‘실패’를 학문 영역에서 처음 구분한 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는 1917년 발표한 논문 ‘슬픔과 우울증’(, 열린책들 펴냄, 2004)에서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병리적 상태가 우울증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상실과 애도는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나아가 현대의 정신분석학자들은 프로이트처럼 ‘정상적’ 애도와 ‘병리적’ 애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별 후에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 당사자에게 필요하고 정당한 반응”이라고 본다(, 김형경 지음, 사람풍경 펴냄, 2012). 애도가 자기 성장과 치유의 기제로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애도의 감정과 직면하는 법, 애도의 감정 표현을 잘하는 법 같은 구체적인 ‘애도의 기술’이 하나의 연구이자 치료 영역이 됐다.

특히 애도를 잘하려면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준에서도 훈련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여성주의 심리학자 미리암 그린스팬은 “심리학의 개인주의적 렌즈”를 벗어나서 사회구성원 전체가 “감정적 문맹” 상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절된 슬픔, 두려움, 절망은 우리 시대의 정신적 혼란, 즉 우울, 불안, 중독, 비이성적 폭력과 심리적 마비의 근원이다. (…) 내가 보기에 부정적인 감정이란 어디에도 없다. 단지 우리가 견디기 힘든 감정을 서투르게 다루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문화에서 평가절하되고 있지만, 이러한 어둠의 감정은 개인과 집단의 치유, 승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종북 옮김, 뜰 펴냄, 2008)

‘나’의 애도가 ‘너’의 애도와 만나서 새로운 ‘우리’를 만드는 일도 가능할까.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애도의 힘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9·11 테러 이후 국민이 느끼는 애도·두려움의 감정을 이라크 전쟁이라는 ‘폭력’의 합리화에 활용한 미국 정부를 비판한다.

“우리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 다른 이들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다른 사람의 변덕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이 모두는 공포와 슬픔의 이유이다. 그러나 취약성과 상실의 경험이 곧장 군사적 폭력과 보복을 낳아야 하는가 하는 점은 별로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 중요한 것은 전쟁에 대한 절규 외에 슬픔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펴냄, 2008) 그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본다.

애도는 권력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간섭받을 수 있는 관리의 대상이다. 정치의 영역이다. 고 백남기 농민을 애도하는 움직임을 두고 인터넷 언론 칼럼을 통해 “시체팔이”라고 비난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의 ‘책임’은 정부가 아니라 죽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했다. 이 학생이 속한 단체 이름은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사)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죽음의 ‘책임’을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에게 묻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에 대한민국이 발목 잡히면 안 된다”며 선체 인양을 반대한 바 있다.

미리암 그린스팬이라면 이 뉴스를 접한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회피하지 말라고 조언할 것이다. “감정적 방관자는 보다 큰 형식의 사회적 방관에 쉽게 동원된다. (…) 우리가 ‘치유’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세계의 복구, 치료 그리고 변화가 없다면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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