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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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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 촛불

‘촛불행동’에 대한 사유를 돕는 책 2권
등록 2016-11-25 17:28 수정 2020-05-03 04:28

반격이 시작됐다. “배후 세력이 혼란과 헌정 중단을 부추기는 좌파 시민단체가 아닌지 의심스럽다.”(11월17일 조원진 새누리당 최고위원) “80년대식의, 정치를 30년 거꾸로 되돌리는 거리투쟁, 거리정치….”(같은 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촛불은 촛불일 뿐 결국 바람이 불면 꺼지게 돼 있다.”(같은 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촛불을 주어로 했지만, ‘끄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보수 세력은 ‘2008년 촛불’의 불씨 하나 남겨놓지 않고자 꾸준히 바람몰이를 해왔다. 2010년 는 촛불행동을 왜곡하는 ‘촛불 2주기’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보도했다. 2012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라고 말했다. 는 11월12일 ‘100만 촛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를 “차벽을 넘어뜨리려는 시도” “시위대의 쇠파이프”가 등장한 ‘폭력 집회’로 틀짓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촛불에 대한 ‘해석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촛불 ‘안’에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슈와 함께 촛불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여기, 우리는 왜 촛불을 들었는가’ ‘모인 촛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적·성찰적 논의다. ‘2008 촛불’을 둘러싼 학계 논의로 축적된 사유들도 끌어올 수 있다.

“2008년 촛불에서 시민들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며, 그 이전에 ‘주권’의 소재와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공화주의의 원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시민적 자치·자결·자율 이념은 민주공화국의 헌법 이념에 대한 충성과 결부되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홍성태 엮음, 문화과학사 펴냄)에서 2008년 촛불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헌법 제1조’에 주목한다. 이 곡은 2016년 촛불에도 이어진다.

“한국 진보 진영 내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는 불편한 문제였다. 국가는 너무나 오랫동안 인민을 억압하고 동원하며,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해체하여 국가신민으로 통합시키는 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가의 역할과 의미가 크게 변했고, 사람들은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정체성에 접합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시민들이 ‘분노’와 함께 공동체에 대한 ‘애착’, 헌법을 향한 ‘충성’으로 움직였음에 주목한 것은 이상길 연세대 교수도 비슷하다. 그는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산책자 펴냄)에서 2008년 촛불을 프랑스의 1986년 시위에 견준다. ‘프랑스 86’은 자크 시라크 총리 때 대학 간 경쟁 도입, 등록금 인상 등 미국식 개혁을 뼈대로 한 ‘대학 자율화’ 법안이 발표되자 고등학생을 포함한 젊은 층이 거리로 나서고 곧 대규모 전국 시위로 번진 일이다.

“86년 시위는 법과 민주적 가치에 대한 존중, 국가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60년대 말의 학생운동이나 70년대의 급진주의와 다르다. (…) 페리와 르노에 의하면 시위 학생들은 메시아적 유토피아주의로부터 벗어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즉 ‘이미 획득한 권리’를 보전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그들의 시위는 또 민주적, 준법적 방식을 지향했다.”

프랑스의 한 ‘68세대’ 철학자는 ‘86’을 가리켜 “유토피아 없는 모럴만 가졌다”고 냉소했다. 이상길 교수는 대한민국의 촛불에도 ‘유토피아’(기성 질서 그 자체에 맞서는 것, 다른 형식의 권력과 미래를 향해 열린 정치적 상상력)와 ‘모럴’(유토피아의 지평을 여러 방향에서 제약하거나 구조화하는 사고의 규범과 습성)의 현실적인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2008년 촛불’의 대표적 모럴은 ‘순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이 약해지기도, 꺼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시민들이다. 촛불이 ‘공격’받을 가능성 있는 그 어떠한 ‘빌미’도 제공하지 않으려는 게시물과 댓글, 현장 발언과 행동이 넘쳐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기고 싶어서다. ‘대통령 하야’라는 목표를 위해서다. 촛불이 가리키는 게 ‘정치의 종말’인가 ‘정치의 확장/진화’인가를 둘러싼 논의는 어찌됐든 촛불이 ‘정치의 의미를 새로 쓰는 일’임을 방증할 뿐이다. 신진욱 교수는 ‘해석투쟁’의 ‘모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촛불찬양과 촛불폄하는 모두 현재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어떤 ‘과정’의 속성을 마치 완결된 ‘존재’인 것처럼 확정지으려는 오류를 범한다. 촛불집회와 그것을 계승하는 풀뿌리 시민행동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고 복잡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해석이 과장된 의미 부여인 것처럼, 촛불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그것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것 역시 세상을 함께 바꿔가고자 하는 동료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정치가 상이한 의지들 간의 상호작용이며, 모든 권력이 관계 속에서 작동하고 변화하는 것이라면, 2008년 촛불에서 시작된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겪게 될 것인가는 그들 자신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관계 맺고 있는 정치, 사회세력의 행동에도 달려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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