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풍자가 넘쳐난다. 한 대학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공주전’은 현 사태를 고전소설 형식에 담아 비꼰다. 소설에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닭씨 성을 가진 공주와 무당 최씨, 무당의 딸 정이가 나온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박근혜와 최태민의 만남,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정유라의 대학 입학 특혜 등 게이트 관련 내용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KBS , SBS 에서도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을 소재로 정치 풍자 개그를 선보인다.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 게이트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풍자 대상이 그득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다. 그럼 박근혜 게이트”라며 핵심 인물을 짚어주고 최씨의 측근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의 연예계 인맥을 소재로 다뤘다. 팔짱을 끼고 고압적인 자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도 패러디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도 거대한 풍자의 장이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승마특기생 정유라를 따라 모형 말을 타고 나오고 흰 셔츠 차림에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은 최순실을 따라한다. 어떤 이들은 박 대통령이 병원에서 사용한 가명 ‘길라임’이 등장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 모습으로 나온다. 또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 3억5천만원을 들여 보급한 ‘늘품체조’를 빗댄 3만5천원짜리 ‘하품체조’를 한다. 서로 ‘누가 더 기발한 풍자를 하나’ 경연이라도 벌이듯.
풍자는 ‘웃픈’ 현실을 딛고 서 있다. 풍자가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돼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 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이다. 당대의 것들을 비판, 공격, 희화하지 않으면 풍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동시에 풍자는 약자의 서사이다. 약자는 권력보다 진실 쪽에 서려 하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다. 약자의 이야기이므로 풍자가 두들기는 대상은 권력을 쥔 부당한 강자, 지배세력과 이데올로기, 지배적 제도와 관행이다. 절망스런 현실을 비판하고 바꾸기 위해 풍자는 “권력과의 싸움”을 벌인다.
“풍자는 문학작가, 미술가, 저널리스트 등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그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자신의 생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이런 비유적 방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은밀한 미소와 통쾌함을 주려고 한다. 풍자는 비꼬기, 희화화하기 등을 통해 분노, 대안, 공평함, 공감 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풍자는 곧 비판인 동시에 이상적인 정치제도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민중의 희망과 두려움을 대변하며 그 당시 상황의 역사적 중요성을 담아낸다. 우리를 한 시대의 분위기와 민중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 데려가줄 그 어떤 수단도 없을 때 풍자는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전경옥 지음, 책세상 펴냄)
장르적 특성 때문에 풍자 서사는 이야기 속 상징물과 현실의 실존 인물 사이에 1대1 연결이 가능한 재현 방식을 채택하고 독자는 그 현실적 연결관계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연결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때 시대 풍자의 효력은 떨어진다. 그러므로 풍자의 유효한 독자는 풍자의 사회적 문맥에 익숙한 당대 사람들이며 이 사실 역시 풍자 서사의 시대 의존성을 잘 말해준다.
풍자는 문학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소설로 불리는 (조지 오웰 지음, 민음사 펴냄). 메이너 농장 주인 존즈를 내쫓고 동물농장을 만든 동물들의 이야기로 권력의 탐욕과 혁명의 변질을 통렬하게 비꼰다.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이후 권력 다툼의 중심에 선 인물과 민중을 상징한다. 조지 오웰은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권력이 부패하는 순간 저항하지 않는 대중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전체주의가 출현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설이 나온 지 70년이 지났지만 작품 속 정치 풍자는 여전히 우리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우리의 고전문학 속 풍자 역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토끼와 자라, 용왕의 이야기를 담은 (이혜숙 지음, 창비 펴냄)은 조선 후기 사회구조를 잘 드러낸다. 당시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토끼는 권력의 상징인 용왕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진정한 권력의 근본은 토끼로 상징되는 백성이다. 이는 무너져가는 조선을 되살릴 수 있는 힘이 토끼 같은 백성에게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으로 이어진다. 토끼는 산속에서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벌벌 떨고 사냥꾼을 피해 도망다니며 굶기 일쑤였다. 게다가 자라를 따라간 용궁에서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토끼는 암울한 현실에서 희망을 찾아내 절대 권력의 용왕과 맞서 통쾌한 한판 승부를 벌여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힘을 보여준다.
어느 시대나 등장하는 부패 권력과 다양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풍자는 언제나 유쾌한 저항으로 맞선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지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기 위해.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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