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반도 남쪽 시민들은 ‘문’(게이트) 앞에 서 있다. 추문과 부패의 파문으로 덧칠된 게이트. 시민들은 묻는다. ‘이 시대는 과연 무엇인가?’ 소설가 조세희는 16년 전 이미 규정했다.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라고. 작가는 1970년대 박정희 독재를 가리켰지만, 그의 딸이 대통령인 지금도 진단은 유효하다. 참담한 역사의 반복이다.
19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간행된 연작소설집 은 2000년 출판사를 바꿔 다시 출간됐다. 출판사 이름은 ‘이성과 힘’. 작가가 책머리에 새로 써넣은 ‘작가의 말’ 제목이 바로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근본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난쏘공’을 책꽂이에서 다시 꺼내들어야 할 이유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조그마한 개선에 현혹되어 주저앉지 않으려면 시민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하나의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정치·민주주의·마음이 열쇳말인 철학서이자 실천서로서 이 책의 핵심은 개인의 내면적 성찰이 공동체 안에서 심화되고, 심화된 마음에서 우러난 용기가 사회 변혁을 이끈다는 통찰이다. 이 책의 부제(‘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가 가리키는바, 마음은 행동의 뿌리이며 정치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사회적 연대도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살아남아 번창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마음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이다. 각자 안에 존재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구성원임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갈등을 끌어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국가의 새로운 삶으로 통하는 출구다.”
‘선출된 왕’으로 둔갑한 대통령, 권능을 송두리째 상실한 대통령을 목도하는 현실에서 (김상봉 외 지음, 문주 펴냄)은 다시 호명할 만하다. 이 책은 2012년 대통령선거를 두 달 앞두고 출간됐다. 여러 논객들이 대통령을 주제로 다양하게 분석하지만, 알짬은 하나로 응축된다. 대통령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것. 철학자 김상봉은 절망을 말했다. 절망의 두레박을 깊은 우물에 던질 때에만 오직 변혁과 희망을 길어올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절망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절망할 줄을 몰라요. 절망한다는 것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걸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고요. 근데 절망해야 할 때마다 미봉책을 들고나와요. 그게 문제입니다. 절망할 줄 알면,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을 줄도 알 텐데. 절망을 해보지 않았으니까, 절망할 줄 모르니까, 내던지지를 못합니다. 그러면서 가짜를 붙잡아요. 언제나 가짜를. 썩은 동아줄을.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절망입니다. 빛은 언제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숨어 있습니다.”
비통한 마음을 안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선 시민들에게 (에이프릴 카터 지음, 조효제 옮김, 교양인 펴냄)은 명징한 이론적·현실적 준거가 되는 책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직접행동은 이제 대의민주주의에서 표출할 수 있는 저항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집회·결사·점거·농성·시위·파업·단식 등이 직접행동의 사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직접행동을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형태의 권력’이라고 갈파했다. 책을 번역한 인권학자 조효제는 직접행동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한다.
“극히 작고 극히 큰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에서 주권재민, 보통선거,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만으로 참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거인들이 민주주의 과정의 배후에서 정치인들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디어, 선전매체,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 작은 사람들의 의식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각종 제도를 통해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철통같이 고수할 때에 투표 행위라는 ‘민주적’ 절차가 민주주의를 과연 얼마나 제대로 보장해줄 수 있을까? (…) 우리에게는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끊임없는 민주화운동이 필요할 뿐이다.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지구화 시대에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아내고, 더 많고 더 강하고 더 좋은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자, 수많은 작은 사람들에게 거의 유일하게 허용된 민주적 ‘안전장치’인 것이다.”
2016년 11월12일 대통령에게 절망한 시민들이 민중총궐기 집회를 연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대하소설 서문)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1136호에서는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지 집중 파헤쳐 봤습니다. 이름하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집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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