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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

대통령제 이해를 돕는 책 4권
등록 2016-11-16 23:29 수정 2020-05-03 04:28

‘대통령’이란 말이 한반도의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한 건 1884년이다. 왕의 일정, 신하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에서다. 고종은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대통령’이라고 칭한다. 그보다 1년 앞선 1883년 조선 최초로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이 체스터 아서 대통령을 만난다. 이때 사절단이 제출한 국왕의 신임장에는 대통령을 ‘백니쇠턴덕’으로 썼다. 프레지던트(President)를 의미하는 ‘빅리어천덕’의 독음이다. 1년 새 일본에서 쓰던 프레지던트의 번역어 ‘대통령’이 넘어왔다.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등장한 건 그보다 100여 년 앞선 1787년이다.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미 연방헌법을 제정해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만들었다. 역사학자 조지형은 (살림 펴냄)에서 “대통령제는 미국혁명에 대한 혁명적 반성에서 탄생했다”고 평가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입헌군주제를 가장 훌륭한 정치제도라고 여기던 시기였다. 조지형은 제임스 매디슨 등 헌법 제정자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본다.

“헌법 제정자들은 근대 계몽사상의 철학적 신조에 얽매인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권재민,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등의 근대 헌정 이론에 정통했다. (…)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그들은 혁명 원리였던 인간의 자유, 생명,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보장되고 실현되는 정치체제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필라델피아의 ‘기적’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사를 깊이 성찰할 수 있는 헌법 제정자들의 통찰력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 대통령제 탄생의 핵심이 ‘균형헌법’에 있다는 의미다. 강력한 중앙정부를 구성하되 행정·입법·사법부 간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지키는 것. 대통령직은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헌법기관의 일부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직의 존재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민주화 항쟁 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가 합의해 개헌됐다. 헌법 규정만으로 평가했을 때 한국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견줘 국회의 강한 견제와 감시를 받도록 되어 있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국무총리에게도 상당한 권한이 부여됐다.

현실은 다르다. ‘기형적 대통령제’ ‘황제 대통령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실질적 권한은 막강하다. 정치학자 함성득은 감시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이 제 역할을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국회나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 규정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과는 상관없이 대통령의 실질적인 권한은 강력하다. 이렇게 우리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한 것은 대통령의 제도적 절차 경시, 심각한 인사권 남용, 공천권 행사, 그리고 당직 임명 등에 의한 국회의 대통령 견제 기능 상실 등에서 비롯되었다.”(, 나남 펴냄)

대통령 리더십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 혹은 대통령의 자질은 헌법정신과 맞닿는다. 행정학자 최평길은 저서 (박영사 펴냄)에서 “대통령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직이라는 제도, 시스템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에 충성심과 전문성을 겸비한 참모 구성과 활동, 각료와 참모와의 협조, 전문 관료와 유기적 협력, 정부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 선정, 법률 입안을 위한 의회와 원만한 관계 유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전달하는 최적 효율성 유지, 지속적 정부 기관의 활동 모니터, 언론과 시민단체와의 원활한 관계 유지는 대통령 국정관리 연구의 핵심이 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전기작가로 유명한 네이슨 밀러가 ‘주관적으로’ 뽑은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의 선정 사유를 살펴보자.(, 네이슨 밀러 지음, 김형곤 옮김, 혜안 펴냄)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사와 친구와 친인척 관리에 실패한 대통령”

“진보적 물결이 이는 혁신주의 시대에 보수주의를 고집한 시대착오적 대통령”

“냉담함과 사교성 부족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떠나게 만든 대통령”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무위도식한 대통령”

“고집불통으로 타협과 협조의 민주주의 원리를 저버린 대통령”

“소심함으로 인해 정객들의 노리갯감이 된 대통령”

“남부에 대한 일방적 편애로 남북전쟁에 불을 댕긴 대통령”

“무능함, 소심함, 부도덕성, 인사 실패”

“삼류 스캔들로 가득하고 좀처럼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대통령”

“국정 경험 부족에서 온 자신만의 높은 도덕 규정으로 국민들과 멀어져 있었던 대통령”

네이슨 밀러는 “대통령직에 대한 개념을 그 누구보다도 도의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으로 본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다양한 대통령 연구물들이 말하려는 것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대통령이 ‘누구’인지보다 대통령직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킨다. 대통령의 우상화 대신 대통령직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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