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다 히데키(50). 일본의 대표적인 르포작가다. 일본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가 해마다 선정하는 르포작가상을 여러 번 받았다. 그가 가장 천착하는 부문은 동남아시아다. 동남아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이다. 일본이 동남아의 자연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알리는 데 평생을 건 사람이다. 가시다를 도쿄 시부야에서 만났다.
애초에 그는 자유인이었다. 대학 2학년 때이던 1980년,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다. 1983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중앙부를 가득 차지한 사막을 역시 오토바이로 두 달간 내달렸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평생 아프리카에 살고 싶어 소말리아의 난민캠프 자원봉사자를 자원했다. 1985년부터 2년간 소말리아에서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아픔을 함께했다.
“일본이 아프리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평생 자원봉사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아프리카를 떠났다. 다음 행선지가 말레이시아였다(1989년). 그 방문이 내 삶을 바꿨다. 일본의 기업들이 파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삶을 바꾸면 동남아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한 자유로운 영혼이 운동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첫 방문지는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팜유 생산을 위해 거대한 열대림들을 파괴하고 기름야자(Oil Palm) 플랜테이션 농장을 세우는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울창했던 밀림이 한순간에 깡그리 파괴되어 있었다. 뽑히고 잘리고 불타고. 주민들은 ‘거대한 불도저와 벌목기를 앞세운 거대기업들이 순식간에 우리 삶의 터전을 망쳤다’고 울먹였다.”
나무농장에 가득한 기름야자들은 살충제와 제초제 그리고 질소비료가 없으면 버텨내지 못한다. 열대림을 불태우고 들어선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독소를 끊임없이 내뿜는다. 자연 속에서 삶을 꾸려가던 원주민들은 플랜테이션의 노동자로 끌려가 고된 노동과 농약에 시들어갔다. 일본이 한 해 수입하는 팜유는 50만t. 말레이시아는 이 수요의 50%를 넘게 차지한다. 컵라면의 면을 튀기는 데 팜유가 처음 사용된 이후 일본의 팜유 수요는 해마다 폭증하고 있다.
사라왁주의 원주민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플랜테이션을 만드는 기업과 이를 허가해준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가시다는 르포를 통해 이런 현실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이들을 지원하는 운동을 조직했다. 열대림 보호운동 단체인 ‘열대림 행동 네트워크’(JATAN)와 ‘숲과 생활을 생각하는 모임’ 등과 함께 연대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그의 여권에는 말레이시아 출입국 도장이 40번 넘게 찍혀갔다.
그의 발길은 타이와 필리핀, 파푸아뉴기니와 네팔로 넓어졌다. 인도네시아 그리고 그와 잇닿은 파푸아뉴기니에서 밀식된 유칼립투스가 만들어내는 ‘녹색사막’의 현장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다. 여기에서 자란 유칼립투스는 제지용으로 잘려나갔다. 일본의 사무용지 수입량은 1996년에 2만6천t이던 것이 2004년에는 39만7천t으로 늘었다. 이 중 80%가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에서 수입된다.
“타이에서도 80년대 중반부터 ‘동북타이녹화계획’이란 이름으로 타이 동북지역에 대대적으로 유칼립투스 농장을 세우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입니다.” 일본이 지원한 개발자금이 타이의 자연을 망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자기비판이다.
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기자연스럽게 삶의 방식도 변했다. 친환경적 삶의 실천이다.
“동남아의 친구들을 일본에 초청하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렇게 좋은 제품들이 이렇게 싸냐고. 어떻게 그런 제품들을 조금만 쓰다가 버릴 수 있냐고. 일본인들이 이런 풍족한 소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동남아시아의 자연과 자원, 노동력을 착취한 대가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함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기. 디자인이나 가격뿐만 아니라, 원산지와 생산 과정, 그리고 그 소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알아보기. 쉽지는 않지만, 한 번쯤은 실천해볼 일이라는 생각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다.
도쿄(일본)=글·사진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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