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안주들. 사진 이순혁
지난 칼럼에서 와인보다 막걸리를 선호한다는 개인적인 취향을 소개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인과 막걸리가 비슷한 가격대일 경우엔 어땠을까?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둘 다 마시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은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바로 막걸리의 큰 장점 가운데 하나가 ‘가격 대비 효용’이 높다는 점이다.
막걸리의 가격 대비 효용을 떠올리면, 고향 전주에 즐비한 막걸릿집들이 생각난다. 언제부터인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몇몇 방송에도 소개가 됐다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저렴하다. 750㎖짜리 탁주 3병이 들어간 ‘한 주전자’에 기본 안주를 더해 가격이 1만2천~1만5천원가량이다.
지난 주말 고향에 내려갔다가 술 생각이 나 동생 등과 함께 동네 막걸릿집을 찾았다. 막걸리 1.5~2ℓ가량에 기본 안주로 김치찜과 족발, 닭국이 나왔다(맨 위 사진). 안주를 다 먹지도 못한 채 한 주전자를 더 시켰다. 이번엔 생선구이와 계란부침, 부추·오징어전이 나왔다(가운데 사진). 서울에서 이 정도 술상을 받으려면 최소 5만~6만원은 줘야 했으리라. 하지만 막걸릿집에서는 2만4천원(첫 주전자값 1만5천원+두 번째 주전자값 9천원)이면 충분했다.
이 막걸릿집이 굵직한 안주 몇 가지로 승부를 걸었다면, 반대로 ‘소량 다품종’을 특기로 삼는 막걸릿집도 있다. 지난해 찾은 막걸릿집이 그랬다(맨 아래 사진). 동태찌개, 꽁치, 고등어조림, 홍어, 양송이, 계란말이, 김치, 두부, 돼지고기, 다슬기, 날치알, 모듬 채소, 꼬막, 완두콩, 브로콜리, 귤, 삶은 계란, 샐러드, 데친 오징어…. 이 집에서는 이 안주들과 750㎖들이 막걸리 세 병을 합쳐 1만2천원을 받았다.
사실 이 정도면 어떻게 적자를 피하는지 신기할 뿐이다. 집안 식구의 한 지인이 막걸릿집을 차렸다기에 그 ‘비법’을 물은 적이 있다. 들려온 답은 “거의 이문이 남지 않을 정도의 박리다매”였다. 막걸릿집들이 워낙 많이 생겨 경쟁이 치열하고, 대량 구매 등 원가 절감 노력도 보통이 아니며, 경쟁에서 도태돼 폐업하는 집도 많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라니, 텁텁한 막걸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나 같은 지갑 얇은 주당에겐 반가운 소식인 것도 사실이다.
그나저나 막걸리 얘기를 계속 하다 보니, 내가 나온 대학의 주당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비전되고 있다는 ‘훈민정주’가 떠오른다. “나랏술이 듕귁에 달아 맛으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젼차로 어린 놈들이 마시고져 홀빼이셔도 마참내 제 맛을 시러 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어엿비 녀겨 새로 막걸리를 맹가노니 놈들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마시메 다 만땅 취하게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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